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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112㎞ 동해안 끼고 달리면 만나게 될 거야, 시리도록 푸른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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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도 산도 ‘푸른 매력’ 울진

경향신문

135m 길이의 인공 산책로인 등기산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울진해안관광도로. 울진은 지형의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평평한 길을 달리며 가깝게 바다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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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항서 출발해 북쪽으로 달리면

오른편 차창 밖엔 파도 넘실대고

망양정서 보는 쪽빛 바다와 송림

그림 같은 풍광이 길게 펼쳐진다

산 사이 굽이치는 계곡길 접어들면

불영사 인근 금강송 ‘청량한 기운’


산이냐, 바다냐. 여름에만 하는 고민은 아니다. 겨울여행도 산과 바다 사이에서 취향 따라 저울질을 하게 된다. 겨울 바다야 그렇다 치고, 겨울 산에 무슨 매력이 있냐 반문하는 이들은 아직 울진을 가보지 못한 게 분명하다. 경북 울진은 예로부터 소나무로 유명하다. 1800㏊가 넘는 부지에 8만여그루가 들어찬 소광리 금강송 숲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산에는 물론이고 해풍 몰아치는 바닷가까지 눈 돌리는 곳마다 울진엔 소나무가 지천이다.

사철 푸른 소나무의 시원한 녹음과 짙푸른 동해 바다, 쨍하게 맑은 한겨울 파란 하늘을 번갈아 가슴에 채우다 보면 ‘시리도록 푸르다’라는 말의 뜻을 절감하게 된다. 여기에 갯바위를 때리는 박력 있는 파도 소리까지 더하면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고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겨울여행이 완성된다.

■ 시리도록 푸른 바닷길

동해 바다와 소나무의 푸른 매력을 찾아가는 여행은 울진해안관광도로에서 시작한다. 울진은 동해안에 자리 잡은 지자체 중 가장 긴 112㎞의 해안선을 끼고 있다. 코앞에 바다를 둔 해안도로 구간도 그만큼 길다. 게다가 울진은 바로 위의 삼척이나 아래쪽의 영덕에 비해 지형의 높낮이가 심하지 않다. 평평한 길을 달리며 더 가깝게 바다를 느낄 수 있다. 왕복 2차선으로 구불구불 뻗은 도로는 중간중간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날 때마다 쉬었다 가기도 좋다.

해안선 드라이브의 출발점은 후포항이다. 후포항에서 시작한 여정은 망양정(望洋亭)까지 40㎞가량 이어진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대신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한 건 물론 바다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두고 달리기 위해서다. 남하하며 보이는 풍경은 맞은편 차도의 차들이 방해하지만, 북상하면 오른편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 바다뿐이다.

울진 후포항은 영덕 강구항, 포항 구룡포항과 다투는 국내 최대의 대게잡이 항구다. 매년 2월 무렵 울진군이 주최하는 대게축제가 벌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경매가 열리면 위판장 바닥에 대게가 붉은 융단처럼 깔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대게는 설을 지나며 겨울이 깊어질수록 살이 차고 맛이 든다. 지금이 딱 먹기 좋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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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산 스카이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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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항에서 대게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에는 산책 삼아 등기산 스카이워크로 가보자. 바다 위 20m 높이에 135m 길이로 뻗은 인공 산책로인데, 끝부분 57m 구간은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돼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마침 바닷바람이라도 세차게 불면 오금이 저릴 정도다. 스카이워크 끝에 다다르면 울진 사람들이 한번씩 소원을 빈다는 후포 갓바위가 내려다보인다. 우람한 바위 위로 넘실대는 파도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소원은 몰라도 스트레스는 확실히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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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이 품은 두 곳의 관동팔경 중 한 곳인 월송정의 소나무 숲은 그늘이 제법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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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항에서 직산항을 거쳐 올라가다 보면 처음 만나는 명소가 월송정이다. 울진이 품은 두 곳의 관동팔경 중 하나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누각인 월송정은 울창한 소나무 숲 끄트머리에 바닷가를 바라보며 서 있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 숲은 그늘이 제법 깊다. 가지 사이로 새어드는 겨울 해는 잔잔하다. 월송정은 한자로 넘을 ‘월(越)’자를 쓰지만 주변 풍경은 분명 큰 달(月) 뜬 밤 오르면 제격일 듯 보인다.

■ 주민들이 지켜낸 풍경

월송정에서 황보천을 건너 10여분 달리면 구산항에 닿는다. 구산리 마을엔 대풍헌(待風軒)이라는 현판을 단 고택이 하나 있다.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이름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실제로 초라해 보이는 작은 건물은 의외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담고 있다.

구산항은 조선시대 울릉도로 가는 수토사들이 순풍을 기다리며 머물던 장소다. 수토(搜討)는 수색하고 토벌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울릉도로 도망간 죄인이나 우리 땅에 침입한 왜구를 수색하고 토벌하기 위해 파견된 관군이 울릉도로 가는 길에 들른 장소가 바로 대풍헌이다. 대풍헌 현판은 1851년 건물을 수리하며 달렸다. 그러니까 대풍헌은 19세기 조선 정부가 울릉도, 더 나아가 독도를 우리 영토로 관리했다는 간접 증거가 되는 셈이다. 당시 구산항에서 울릉도까지는 바람을 잘 받아도 하루 이틀이 걸렸다고 한다. 구산항 포구 앞에는 최근 대형 독도 조형물이 설치돼 관광객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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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촛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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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풍헌을 떠나 북상하다 보면 길은 바닷가를 벗어나 동해안 일주도로인 7번 국도로 이어진다. 매화면 덕신리부터 망양정까지 다시 해안도로가 이어지는데, 이 구간은 울진의 전형적인 어촌마을을 가로지른다. 작은 등대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바다를 쳐다보는 낚시꾼들, 낮은 담장 너머로 주민들이 길가에 내어두고 말리는 생선까지 소소한 풍경들이 정겹다.

도로변에 덩그러니 솟은 울진 촛대바위도 그렇게 정겨운 사연이 있는 장소다. 꼭대기에 솟은 소나무 한 그루가 꼭 흔들리는 촛불처럼 보이는 촛대바위는 1980년대 후반 울진해안도로 구간 중 미개설 구간인 산포~진복 해안도로를 공사하며 사라질 뻔했다. “대대로 함께한 동네의 절경인데 없애선 안된다”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바위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덕분에 도로는 바위와 바짝 붙어 빙글 돌아 나간다. 바위를 거칠게 덮치는 파도와 부서지는 포말이 쌩 지나가는 차창으로도 손에 잡힐 듯 보인다.

■ 대들보에 새긴 신라인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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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정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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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바위에서 망양정에 이르는 약 4㎞ 남짓한 도로변 산기슭에서는 펜션과 민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바다 전망이 좋다는 뜻이리라. 실제로 울진의 겨울 바다는 망양정에서 절정이었다. 망양정은 산포리의 야트막한 언덕배기 꼭대기에 서 있다. 해안도로에서 완만한 산책로를 200여m만 오르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 정자에 닿는다.

사방이 탁 트인 망양정에선 북쪽으로 왕피천이 동해 바다와 합류하는 물길이 뚜렷이 보였다. 발아래 짙게 펼쳐진 송림은 쪽빛 바다, 맑은 하늘과 함께 계단처럼 층을 이루며 그림 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 남북으로 십리는 족히 펼쳐진 해변에는 파도가 가까워졌다 또 멀어지며 기다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시간 보내기 나름이지만 해안도로 드라이브는 보통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바닷바람을 충분히 즐겼다면 이번엔 계곡으로 가보자. 망양정에서 왕피천을 따라 36번 국도로 접어들면 매봉산, 금산, 천축산 등 주변 산 사이로 웅장하게 굽이치는 계곡길이 계속된다. 백미는 불영계곡 중턱에 자리 잡은 불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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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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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절집들이 으레 그렇듯 불영사도 일주문 지나 사찰로 들어가는 진입로의 경치가 유달리 아름답다. 사찰 바로 앞까지도 차를 몰고 갈 수 있지만 들머리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는 걸 추천한다. 쉬엄쉬엄 걸어도 20분이면 충분하다. 바위산을 뒤덮은 푸릇푸릇한 소나무와 에메랄드빛 계곡물은 지금이 겨울인지 여름인지 계절을 잊게 만들 정도다. 불영사 인근에 지천으로 자라는 3만3000여그루의 금강송이 내뿜는 청량한 공기는 들이쉬는 숨마다 기운을 북돋는다.

신라 진덕여왕 5년(65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 불영사엔 대웅보전(보물 1201호), 응진전(보물 730호), 영산회상도(보물 1272호) 등 문화재가 그득하다. 대웅보전 앞 삼층석탑은 단아한 신라탑의 전형이다.

대웅보전에선 거북이를 꼭 찾아보자. 계단 양쪽 옆으로 머리와 앞발만 튀어나온 거북이는 불기운을 눌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조각이다.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가면 대들보에 나무로 만든 거북의 나머지 몸통 부분이 손바닥만 하게 붙어 있다. 애써 거북을 만들어놓은 보람도 없이 불영사는 1400여년 세월 동안 여러 차례 화마를 입었지만, 선조들의 유머에는 슬며시 웃음 짓게 된다.

울진 | 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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