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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필동정담] 패키지여행 `쇼핑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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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패키지여행은 1990년대 초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처음이었다. 코로나19 공포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던 1월 중순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목적지로 정했는데 그곳 숙소나 현지 교통편을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언어 장벽도 걱정됐다. "여행사에 맡기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으로 패키지 상품을 골랐다.

우리 일행은 27명. 이 정도 인원이면 '코리안 타임'으로 빈축을 사는 사고뭉치가 끼어 있을 법도 한데 우리 팀은 준수했다. 식사 테이블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고도 친근하게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연령대도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패키지여행에는 이런 즐거움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쇼핑을 최소화했다'는 이 패키지 상품은 3박5일 일정에 1인당 60만원짜리였다. 여행가이드 수고비 40달러와 비자발급 수수료 30달러는 별도다. 여기에 현지에서 옵션 여행비가 130달러씩 추가됐다. 일행 중 어느 누구도 빠질 수 없는 '강요된 옵션'이었지만 단체관광이니 그러려니 했다.

여행 4일째 '쇼핑'이 시작되자 즐겁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망가졌다. 우리 일행은 호텔을 나서자마자 학원 강의실 같은 방으로 안내됐다. 상황버섯 효능을 무려 1시간가량 설명하더니 300달러에 이른다는 그 버섯 살 사람을 찾는다. "누군가 사주면 좋을 텐데" 하고 서로 눈치를 살피지만 아무도 없다. 어색한 침묵이 길게 느껴졌다. 관광버스로 돌아와서도 분위기는 냉랭하다. 여행가이드는 침묵 모드다. 다음 행선지가 어딘지 알려줄 생각조차 않는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뒤 꿀·연고 등을 파는 잡화점으로 또 안내됐다. 여기서도 30분 동안 쇼핑 강의를 들어야 했다.

동네에 유랑극단이 찾아오면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싸구려 효도 상품을 이것저것 사오던 시절이 있었다. 10~20년 전 일이다. "왜 이런 것을 사오냐"며 핀잔을 주던 아들·딸 그리고 손자·손녀가 지금 여행에 나선다. 동남아까지 갔는데 그곳에 유랑극단처럼 상품을 팔아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참 후진적인 패키지여행 모습이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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