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27명. 이 정도 인원이면 '코리안 타임'으로 빈축을 사는 사고뭉치가 끼어 있을 법도 한데 우리 팀은 준수했다. 식사 테이블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고도 친근하게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연령대도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패키지여행에는 이런 즐거움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쇼핑을 최소화했다'는 이 패키지 상품은 3박5일 일정에 1인당 60만원짜리였다. 여행가이드 수고비 40달러와 비자발급 수수료 30달러는 별도다. 여기에 현지에서 옵션 여행비가 130달러씩 추가됐다. 일행 중 어느 누구도 빠질 수 없는 '강요된 옵션'이었지만 단체관광이니 그러려니 했다.
여행 4일째 '쇼핑'이 시작되자 즐겁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망가졌다. 우리 일행은 호텔을 나서자마자 학원 강의실 같은 방으로 안내됐다. 상황버섯 효능을 무려 1시간가량 설명하더니 300달러에 이른다는 그 버섯 살 사람을 찾는다. "누군가 사주면 좋을 텐데" 하고 서로 눈치를 살피지만 아무도 없다. 어색한 침묵이 길게 느껴졌다. 관광버스로 돌아와서도 분위기는 냉랭하다. 여행가이드는 침묵 모드다. 다음 행선지가 어딘지 알려줄 생각조차 않는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뒤 꿀·연고 등을 파는 잡화점으로 또 안내됐다. 여기서도 30분 동안 쇼핑 강의를 들어야 했다.
동네에 유랑극단이 찾아오면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싸구려 효도 상품을 이것저것 사오던 시절이 있었다. 10~20년 전 일이다. "왜 이런 것을 사오냐"며 핀잔을 주던 아들·딸 그리고 손자·손녀가 지금 여행에 나선다. 동남아까지 갔는데 그곳에 유랑극단처럼 상품을 팔아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참 후진적인 패키지여행 모습이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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