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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매경포럼] 중산층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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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코로나19가 경제에 주는 충격을 현재 단계에서는 섣불리 가늠하기 어려울 것 같다. 갈수록 비관적 전망이 커진다. 무디스가 올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로 낮춰 잡았는데 노무라증권은 최악의 경우 0.5%로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이 진원지 중국에 인접했고 교역량이나 의존도가 다른 나라보다 높은 만큼 피해를 가장 많이 볼 것이라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만 해도 올해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전년 대비 기저효과가 작용할 것으로 봤다. 지난해보다 더 어려워지랴 싶은 막연한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벼랑 끝으로 몰리는 분위기이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아닌지 불안감이 커진다.

연초에 매일경제가 내걸었던 경제 살리기 캐치프레이즈는 '중산층이 희망이다'였다. 중산층을 늘릴 대안을 찾아 도약하자는 제안이었다. 중산층은 전체 가구소득 순위에서 맨 가운데 중위 소득자를 중심으로 50~150%에 해당하는 가구를 지칭한다. 그런데 지난 5년 새 경제의 허리인 30·40대에서 중산층 비중이 감소했다. 2013년 전체 중산층에서 30대 비중은 21.7%, 40대는 28.9%였다. 2018년엔 각각 15.7%, 24.9%로 줄었다. 반면 60대 비중은 19.9%에서 32.6%로 늘었다. 이미 자산을 쌓은 60대는 늘고 한창 활동하는 30·40대는 줄었으니 역동성을 잃은 사회다. 젊은 층의 중산층 이탈은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를 뜻하니 심각하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34.6%만 스스로를 중산층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2013년엔 44%였는데 후퇴했다.

미국 상무부가 2010년 중산층 보고서(Middle Class in America)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중산층을 특정 소득 구간에 해당하는 계층으로 보지 않았다. 그 대신 현재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면서 자녀의 나은 미래와 자신의 노후 생활에 대한 대비를 한 계층으로 정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주택과 자동차를 소유하면서 의료 혜택과 가족 여행, 자녀의 대학 교육과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영위하는 계층이었다. 소득 수준에 따라 각각 눈높이는 다를 수 있지만 위 6가지가 모두 충족돼야 중산층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1기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중산층 강화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는데 그 팀의 작품이었다. 누구든 적절한 계획과 자산 관리로 노력하면 중산층의 열망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려는 취지였다.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2018년 국내 4대 금융그룹 산하 한 연구소에서도 비슷한 보고서를 만든 적이 있다. 중산층을 '든든한 가정'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4인 가족 기준 33평 정도의 주택과 중형 자동차를 갖고 있고 자녀의 대학 교육 비용과 건강보험 실손보험 등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며 여가 생활과 노후 대비를 위한 연금 납부 등까지 가능한 소득이 있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설문조사를 해보니 대상의 68%가 스스로를 '든든하지 못하다'고 응답했다. '노후 준비가 부족해서'(28%) '미래 소득이 불확실해서'(27%) 등의 이유였다. 주택 관련 지출에다 자녀 교육에 돈을 쏟아붓다 보니 노후 준비가 희생된 대한민국 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이 그대로 투영됐다.

2017년 3만달러 대열에 진입한 1인당 국민소득(GNI)은 2018년 3만3400달러로 늘었지만 2019년엔 뒷걸음질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성장도 더뎠고 달러 대비 원화 가치도 하락한 결과다. 수치만이 아니라 가계의 호주머니 사정이 실제로 어려워졌다. 그래도 사회의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가계에 희망을 불어넣어야 한다. 나도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거나 중산층이라는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구호로 될 일은 아니다. 보편적 복지를 내세운 현금 살포로 풀릴 일도 아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밖에 없다. 그것이 중산층을 키우는 길이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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