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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논설실의 뉴스 읽기] 우한 안가고 허둥댄 시진핑, 종신 집권 도전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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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反시진핑 정서 확산]

2017년 黨대회 후 전권 쥐고도 총리에게 폐렴대책반 맡겨

우한 방문 시기 놓쳐 위기 자초… 의사 리원량 사망하자 국민 분노

당내 반대파, 후계자 지명 압박땐 시진핑 장기 집권에 타격 가능성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코로나 사태와 관련, 중국 소셜 미디어에 시진핑 주석을 직접 겨냥한 비난 글이 쏟아지고 있다. 당과 지도자 비판이 엄격히 통제되는 나라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우한 폐렴'의 진실을 폭로했던 의사 리원량(34)이 사망한 이후 지식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독재 비판과 언론 자유 요구가 결합하고 반(反)시진핑 정서가 빠르게 확산하는 양상이다.

리원량 동문 "폐렴 사태 키운 시진핑이 역사 죄인"

리원량의 중학 동문이라는 하버드대 방문학자 장룬은 "모든 권력을 쥐고도 폐렴 사태를 키운 시진핑이 역사의 죄인"이라고 했다. 칭화대 쉬장룬 교수는 '분노하는 인민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글에서 "(시진핑) 독재하에서 중국 정치 체제가 무너졌다"고 했다. 쉬 교수는 2018년 주석 임기 제한을 없앤 시진핑을 비판했다가 정직 처분을 받았다. 최근 연락 두절 상태라고 한다. 인권운동가 쉬즈융은 시진핑 퇴진을 요구하는 공개서한까지 썼다. 이에 대해 베이징의 한 잡지사 주간은 "(폐렴 사태가) 시진핑 독재뿐 아니라 중국 정치 전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우한 화중사범대 탕이밍 교수는 "중국 헌법에 보장된 언론 자유가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고 했다. 베이징대 장첸판 교수는 "리원량 사망일을 '언론 자유의 날'로 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제2 톈안먼 사태'에 대한 우려까지 나왔다. 우한대 친첸훙 교수는 "후야오방 당 총서기가 사망했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덩샤오핑 후계자로 꼽혔던 후야오방은 1986년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실각했으며 1989년 4월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던 학생 시위가 그해 6월 톈안먼 사태로 폭발했다.

위기를 자초한 시진핑

'제2 톈안먼'이 거론될 정도의 상황을 만든 건 시진핑 자신이다. 역대 공산당 지도자들은 '현장 중시'로 국민 신뢰와 지지를 얻었다. 마오쩌둥은 총을 들고 전쟁터에서 싸웠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이 벽에 부딪히자 직접 남쪽 거점 도시를 도는 '남순강화(南巡講話)'로 난관을 뚫었다. 후진타오는 쓰촨 대지진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시진핑은 재앙이 닥친 우한에 가지 않았다. 1월 27일 리커창 총리를 보냈다. 내치(內治)는 총리 담당이기 때문에 리커창이 가는 게 자연스럽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쓰촨 대지진 복구는 원자바오 총리 담당이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총리에게 권력을 나눠주지 않았다. 역대 총리가 맡던 중앙재경영도소조(경제 총괄) 조장까지 가져갔다. 그래 놓고 폐렴 대책반은 리커창에게 맡겼다. 뒤로 빠지는 장수를 따를 병사는 없다. 한 중국 기자는 "시진핑이 미적거리다 우한 방문 타이밍을 놓쳤다"고 했다.

공산당 이론지가 최근 "시 주석이 지난달 7일 코로나 대책을 간부들에게 지시했다"고 뒤늦게 공개한 것도 패착이다. 지난달 20일 공식 대응에 앞서 시 주석은 내부적으로 서둘렀는데도 밑에서 늑장을 부린 것이란 메시지를 주려고 했을 것이다. 시진핑은 후베이성 서기를 자르고 후임에 측근을 임명했다. 꼬리 자르기 시도다. 그런데 민심은 "위험을 일찍 알고도 2주 동안 뭐했느냐"고 분노한다. 공산당이 좀처럼 하지 않는 선전·선동 실패다. 다급하니 실수한 것이다.

"당내 반대파, 반격에 나설 가능성"

조선일보

지난 30년간 중국 붕괴론은 3번 제기됐다. 톈안먼 사태는 '정치 붕괴론'을 불러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산당을 대체할 정치 세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공산당 일당 지배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1997년 금융 위기 때는 '경제 붕괴론'이 나왔지만 당시 중국은 위안화를 절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며 성장 기회로 삼았다. 2008년에는 '사회 붕괴론'이 제기됐다. 빈부 차와 민족 갈등이 중국 사회를 뒤집을 수 있다는 주장인데 중국의 감시·통제 시스템은 그런 틈을 주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 체제는 보이는 것보다 강고하다.

그러나 시진핑 1인 독재는 다를 수 있다. '황제'라고 불리지만 당내 반대파가 엄존한다. 시는 2012년 권력을 잡자마자 '부패 척결'을 한다며 정적(政敵) 제거에 나섰다. 최고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가 나눠 가졌던 권력을 하나씩 뺏더니 2017년 당 대회 직후엔 주석 임기를 없애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덩샤오핑이 만든 집단 지도 체제 전통을 사실상 깬 것이다. 특히 지난 당 대회에선 후계 그룹을 미리 지명하는 관례도 따르지 않았다. 2022년 당 대회에서도 후계자를 공개하지 않으면 시진핑 독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시는 2017년 대회에서 "2035년 중국 현대화 국가"를 유달리 강조했다. 82세가 되는 2035년까지 집권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최근 반(反)시진핑 목소리는 장기 집권 계획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숨죽였던 반대파들이 반격 기회를 노릴 것이다. 민심을 잃은 독재자는 허점을 보이게 마련이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공산당 내부의 파벌 싸움은 살벌하다. 음모와 배신이 판친다. 시진핑 등극도 태자당(시진핑 계열), 상하이방(장쩌민 계열), 공청단파(후진타오 계열)의 협상 산물이다. 전 주중 외교관은 "2022년 당 대회 전에 후계자를 지명하라는 압력부터 커질 것"이라고 했다. 현 지도부인 정치국원(25명) 가운데 후계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은 그동안 홍콩 시위나 미·중 무역 전쟁 같은 위기를 '외세 공격'으로 규정하고 내부 단속에 활용했다. 그러나 폐렴 사태는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자기 실책이다. 확산세가 잡히면 "인민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전하겠지만 중국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당내 반대파도 벼르고 있을 것이다. 철옹성 같던 시진핑 권력의 위기는 이제 시작일 것이다.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5000년 중국 역사가 그랬다.

[시진핑 후계자로 누가 하마평되나]

시진핑 비서실장 딩쉐샹, 충칭시 서기 천민얼, '리틀 후진타오' 후춘화 주목



조선일보

딩쉐샹, 천민얼, 후춘화


중국 최고 지도자는 뚝 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지도부로 불리는 당 정치국원(25명) 가운데 선발된다. 현재 경력으로는 후춘화(57) 부총리가 돋보인다. 1983년 베이징대 졸업을 앞두고 자원해서 전기도 안 들어오던 티베트 자치구로 갔다. 덩샤오핑이 직접 칭찬했다. 독립 요구가 잇따르던 티베트에서 19년 근무하며 지역 말과 춤을 배웠다. 티베트 서기로 부임한 후진타오가 후춘화를 데리고 베이징으로 복귀했다. 벌써 네이멍구와 광둥성 서기를 지냈지만 시 주석이 공청단파인 '리틀 후진타오'를 후계로 낙점할지는 미지수다.

시진핑 비서실장인 딩쉐샹(58) 당 중앙판공청 주임은 시 주석이 2007년 상하이 서기 시절 발탁한 정치 참모다. 당시 상하이에서 발생한 정치 파동을 무사히 넘기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시진핑은 상하이방(장쩌민 계열) 지지를 얻어 주석까지 올랐다. 역대 판공청 주임 가운데 양상쿤은 국가 주석, 원자바오는 총리가 됐다. 천민얼(60) 충칭시 서기는 시가 저장성 서기 시절 저장일보 사장을 지내며 '시진핑 칼럼'을 만들었다. 시진핑 마음을 가장 잘 읽는 측근이다. 구이저우 서기에 이어 요직인 충칭 서기로 발탁됐다. 시 주석이 딩쉐샹이나 천민얼을 내세우고 '상왕'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현 최고 지도부(상무위원)인 왕양(65) 정협 주석은 2022년 공산당 대회에서 나이 제한(68세 이상 불가)에 걸리지 않는다. 충칭·광둥 서기를 지냈고 경제에 밝다. 정치국원 경력만 13년째다.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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