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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도쿄리포트] 한·일 관계 '3월 위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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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크루즈·경제 문제로 곤경… 고비마다 '反韓 여론' 이용 전력

두 정상 국민 불신 벗어나기 위해 다시 양국 관계 희생양 삼나

조선일보

이하원 도쿄 특파원


'리더십 위기의 5가지 이유'.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2018년 7월 특집 기사 제목이다. 이에 따르면 지도자들은 5가지 잘못으로 리더십 위기를 맞는다. ①좋은 결과에 대한 집착 ②자신의 조직을 '잘 작동하는 기계'로 착각 ③오만함 ④자신에 대한 이해 부족 ⑤의미 없는 성취감 추구.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621명이 우한 폐렴에 집단 감염된 크루즈선 사태에서 5가지 잘못을 모두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56국의 3711명이 탄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가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 접시'가 되도록 방치했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감염률 16%로 중국을 제외한 세계의 우한 폐렴 환자 중 3분의 2가 여기에서 나왔다. 일본 정부가 자초한 대참사(大慘事)로 세계사에 남을 만한 기록이다.

아베는 미증유의 이번 사태에서도 다가온 도쿄올림픽 성공에만 집착했다. 일본의 책임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이 배를 '해상 봉쇄'하는 데만 급급했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무사히 넘겼던 일본의 보건 위생 당국을 과신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님에도 정무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교만을 보였다. 인명 보호와 안정한 생활이 도쿄올림픽 성공보다 앞서는 가치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크루즈선 사태는 평소엔 문제가 없지만 매뉴얼에 없는 사건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일본 사회를 보여준 측면이 있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태에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아베의 리더십도 그대로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아베는 자신의 장기였던 경제에서 코너에 몰리고 있다. 지난해 4분기에 국내총생산(GDP)이 5분기 만에 -1.6%의 역(逆)성장을 기록했다. 올 1월 수출과 수입은 지난해 동기(同期)와 비교할 때 각각 2.6%, 3.6% 감소했다. 무역수지는 3개월째 적자다. 국비로 진행되는 '사쿠라를 보는 모임'에 자신의 후원 회원들을 대거 초청한 스캔들은 계속 진행 중이다. 그가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과언이 아니다.

한·일 관계를 주시하는 양국의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이 부분이다. 아베는 2012년 2차 집권 후,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강공(强攻)으로 크고 작은 위기를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강경 대응하고,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고강도 반발을 통해 반한(反韓) 여론을 결집시켰다. 얼마 전, 아베의 관저(官邸) 상황에 밝은 한 일본 지식인이 기자에게 "아베 총리가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 관련 이슈를 다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아베와 비슷한 유혹을 느낄 만한 상황이다. 아베 총리에 비해서는 우한 폐렴 대응을 잘한다는 여론 조사가 있지만 그의 '분열의 리더십'에 등을 돌리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 야당의 총선 승리를 바라는 여론이 그 반대에 비해 높아진 것은 문 대통령도 위기 상황에 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각에서 '여권이 4월 총선 승리를 위해 반일(反日) 감정을 다시 활용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흘려들을 수 없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최근 "봄이 오면서 다시 불온한 공기가 일본과 한국을 뒤덮기 시작한다"고 분석했다. 징용 배상 판결로 압류된 일본 자산의 현금화에 일본이 보복하는 시나리오가 조만간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3월 위기설'이 거론되고 있다. 리더십 위기에 처한 양국의 두 지도자가 국민 불신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한·일 관계를 희생양으로 삼는 시나리오가 작동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이하원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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