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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만물상] 혁신을 감옥에 보내려 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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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발명가 장영실은 마차 때문에 관직에서 쫓겨났다. 세종이 그가 만든 마차를 타고 경기도 이천으로 온천욕을 갔는데 중간에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났다. 장영실은 의금부에 투옥됐고, 불경죄로 파직까지 당했다. 이 사고로 마차 보급은 중단됐다. 300년 뒤 영조가 중국식 마차를 들여오려 했다. 좌의정이 “마차에 여러 명이 섞여 타면 신분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반대했다. 조선의 운송 혁신은 그렇게 꺾이고 말았다.

▶서양에선 20세기 초까지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 역할을 했다. 뉴욕시에선 말 20만 마리가 하루 2000t의 분뇨를 거리에 쏟아내 '말똥 공해'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말똥 먼지 탓에 기관지염 환자가 속출하고 파리가 들끓어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도 빨리 퍼졌다. 자동차 등장은 이런 고민을 일거에 해결했다. 마부들이 반발하자 자동차 운행을 제약하는 붉은깃발법까지 나왔지만 대세를 바꾸진 못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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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차량 소유와 유지에는 돈이 많이 든다. 자연스레 여럿이, 함께, 나눠 쓰는 공유차량 사업이 나타났다. 그런데 우버 같은 사업 모델은 한국에선 불법 영업으로 간주됐다. 이런 규제를 벗어나려고 몇몇 기업인들이 승합차를 렌트해주고 운전기사까지 알선하는 형태로 '타다' 사업 모델을 고안해 냈다. 고객 회원이 170만명에 이를 만큼 인기가 폭발하자 택시업계가 들고 일어났다. 검찰은 불법 택시영업 혐의로 타다를 기소했다. 벤처 단체들이 "혁신을 범죄 취급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면서 무죄 탄원서를 재판부에 냈다.

▶어제 법원이 타다 서비스를 '불법 택시'가 아니라 '합법 렌터카'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택시보다 비싼 요금에도 타다 이용자가 증가하는 것은 시장(市場)의 선택"이라고 했다. 사회적 논란을 의식한 듯 재판부는 "택시 등 모빌리티 산업의 주체들이 규제 당국과 함께 고민해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재판의 학습 효과이자 출구 전략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과자가 될 뻔한 타다 이재웅 대표는 "혁신을 꿈꾸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간이 왔다"면서 선고를 환영했다.

▶사람에게 생로병사가 있듯 산업도 그렇다. 혁신 상품과 서비스가 등장하면 기존 모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세상 이치다. 택시기사들의 생계 대책은 상생기금 조성 같은 별도 해법을 찾아야지 혁신 모델을 억눌러서 해결할 순 없다. ‘타다 금지법’을 추진 중인 일부 정치인은 조선시대 마차 반대자들처럼 시대착오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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