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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글로벌 트렌드] 아마존 공습에…막 내린 日유통공룡의 `대형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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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일본 대형 유통업체 이온은 사장 교체와 함께 대대적인 변화 모색에 나서고 있다. 도쿄 시내 한 이온 매장 전경. [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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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이온이 3월 1일 신임 사장을 맞이한다.

사장이야 때 되면 바뀌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리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 1997년 이후 23년 만에 이뤄지는 사장 교체이기 때문이다.

창업가 집안 출신 오카다 모토야(68) 현 사장이 회장으로 물러나고 이온에서만 37년을 일해온 요시다 아키오(59) 부사장이 사장 자리를 물려받는다. 장기집권 해온 창업가 가문 카리스마 경영자가 퇴진하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이번 인사는 이온 향후 전략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란 점에서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공격적 인수·합병(M&A)을 통한 유통업계 대형화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것이 핵심이다. 당장 눈앞에 변화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온라인으로 중심 이동, 더 정확히는 아마존 공세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온 사정을 들여다보자. 오카다 사장은 취임 이후 덩치를 키우는 데 주력했다. 그의 재임 기간에 이온은 야오한그룹, 마이카루, 다이에 등 대형 유통업체를 인수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대형화를 해온 것은 나름대로 현명한 전략이었다. 대형화를 통해 가격 협상력을 높였고 이를 바탕으로 저가 공세에 나설 수 있었다. 일본 시장에 진출한 월마트, 까르푸 등 대형 글로벌 업체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규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전략은 효과적으로 작동해 이온발 가격경쟁은 지난 20여 년간 일본 유통업계를 규정하는 키워드였다. 월마트 역시 일본 시장에서 그다지 힘을 쓰지 못했고 까르푸 일본법인은 결국 이온에 흡수됐다. 정점은 2013년 이뤄진 다이에 인수였다. 1위가 3위를 사들이면서 이온 유통제국은 더욱 공고해졌다. 일본 유통시장이 이온과 세븐앤아이홀딩스(세븐아이)의 양강 체제로 굳어졌다.

세븐아이는 세븐일레븐(편의점 업계 1위)과 대형 할인점 2위인 이토요카도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세븐아이 역시 2000년대 들어 소고백화점, 세이부 등 업체를 잇따라 인수했다.

오카다 사장이 공격적 M&A를 통해 이온 매장을 일본 전역에서 2만1000여 개까지 폭발적으로 늘려 나가는 사이에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온라인 쇼핑이었다. 유통업체는 실제 매장이 중요하다는 오카다 사장 철학에 따라 이온은 온라인 사업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난해 기준으로도 이온 전체 매출에서 온라인 비중은 1%에 불과하다. 일 유통업체 평균(6%)에 비해서도 한참 떨어지는 수치다.

이온과 세븐아이 등 전통업체가 대형화에 집중할 때 아마존은 물론 라쿠텐 등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영토를 넓혀나갔다.

온라인 쇼핑업체 성장 여파가 피부로 체감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이후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와 온라인 쇼핑 확대로 인해 기존 유통업체 매출이 날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매장 수 축소였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편의점, 슈퍼, 백화점 할 것 없이 모든 채널에서 매장 수가 정체 혹은 감소하고 있다. 거품경제 시절 경쟁적으로 들어섰던 지역 백화점들은 아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지난달 지역 내 유일한 백화점이던 오오누마백화점이 파산하면서 도쿠시마현에 이어 야마가타현까지 백화점 제로 광역지자체가 된 것은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존 대형화 전략이 붕괴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등판한 것이 요시다 차기 사장이다.

신규 매장 개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최근에는 디지털 관련 사업을 비롯한 성장사업 분야를 총괄해왔다. 그는 이미 향후 목표로 종합슈퍼와 식품슈퍼의 개혁, 디지털 시프트, 아시아 시프트 세 가지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있다. 그는 1월 차기 사장 선임이 결정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온라인과 실제 매장 간 대결구도라는 인식 자체가 낡은 것"이라며 "온라인 고객이 실제 매장에도 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시다 차기 사장은 의욕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과연 이온이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온라인 시장에서 전통적인 유통업체들이 상대해야 할 아마존 등 경쟁자의 아성이 워낙 공고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체 사업 규모로 보면 일본 최대인 세븐아이의 그룹 전체 매출이 12조엔가량이며 이온 역시 8조엔가량이다. 1조7000억엔 수준인 아마존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온라인 시장에서 아마존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신선식품, 의류 등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기존 온라인 업체 역시 고전하고 있다. 일본의 이베이라 불리기도 했던 라쿠텐 역시 최근 아마존에 대응하기 위해 무료배송 등을 추진했다가 입주업체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해 고전 중이다. 라쿠텐은 지난해 결산에서 8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금껏 온라인 사업을 해온 업체들도 고전하는 상황이다 보니 디지털 사업 경험이 적은 대형 유통업체는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23년 만에 이온 경영 바통을 물려받은 요시다 차기 사장의 도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도쿄 = 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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