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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직장인 레시피] 신뢰와 소통, 의심과 오만 중 당신은 어떤 리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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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리더가 된다는 것은 승진을 의미한다. 권한도 커지고 그에 따른 책임도 커지기에 어찌 보면 ‘고위험 고수익’ 주식과 같은 것이다. 1년 내내 상종가를 치면 좋겠지만 그건 꿈이다. 대박은 고사하고 그저 연말에 결산할 때 조금이라도 오르면, 깡통 주식만 되지 않아도 성공한 셈이다. 이 상승 그래프는 분명 리더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그릴 수 없다. 부서원 모두의 공감 그리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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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잘해야 본전’ ‘뒤에서 욕먹는 자리’

지금의 직장에서 ‘리더’ 혹은 ‘리더십’이란 말조차 구태의연의 증거일 수 있다. 개성과 창의력 그리고 개개인의 인격이 존중되는 세상에서, 혹은 평생 직장이 아니라 마치 유목민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는, 그래서 직장에서의 몇 년 경력조차 겨우 이력서 한 줄 채우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직장에서 말이다. 또한 멘토, 롤 모델 혹은 선배라는 개념조차 그저 나이 많은 ‘꼰대’를 지칭하는 포괄적 단어가 되어 가는 세상에서 말이다.

직장은 사무실 개수만큼 부서가 나뉘어 있고 사무실 방마다 그 옛날 ‘정·부 책임자’란 명패는 아니지만 누군가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상사라고 부르고 그는 ‘선출직 권력’이 아닌 ‘임명직 권력’으로 엄연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사실 그 상사가 갖고 있는 ‘권력’에 관해 직장인들은 근본적인 의문을 품은 적이 없다. 오래 전부터 내려온 관례, 혹은 효율을 강조하는 직장 고유 문화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저 ‘머리 약간 안 좋고 게으르고 인연 있는 상사’ 만나기를 천지신명께 기도할 뿐이다.

그렇다면 역지사지로 상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그 역시 ‘천사부터 진상까지’, 수많은 상사를 거치면서 그 자리에 올랐다. 또 상사가 된 입장에서 꿈과 야망만 있을까. ‘잘해 보자’는 각오를 스스로 다지며 능력 있고 센스 있고 게다가 충성스런 부하 직원 만나기를 그 역시 기도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입장, 즉 상사와 부하 직원 중에서 급한 것은 누구일까. 얼핏 ‘모셔야’ 할 입장인 부하 직원이 더 눈치보고 급할 것 같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김칫국이라도 먼저 먹어야 할 사람은 상사다. 첫 번째 이유는 시간이다. 상사는 고3이다. 평직원은 고1 혹은 아직도 중학생이다. 고3에게는 대입이라는 시험이 기다리듯 상사들 역시 성과 성적표가 기다린다. 물론 재수까지 기다려 주는 직장도 많지만 3수, 4수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버티기 시합’에서의 절대적인 불리함이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혹시라도 벌어지는 직원과의 마찰, 갈등 등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고 곪은 채로 시간이 지난다면 그 후유증 역시 상사의 몫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골칫덩어리 직원은 다른 곳으로 보내든지, 최후에는 잘라 버려’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역시 상사에게는 ‘리더십 빵점’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상사는 하기 싫어도 리더가 되어야 한다. 리더는 말 그대로 앞에서 끄는 사람이다. 한 조직을 이끌고 목표를 향해 나간다는 것은 망망대해에서는 등대 역할을, 사막에서는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능력이다. 입은 10개인데 빵이 3개뿐이라면 10명에게 공평하고 배부르게 배분하는 것이 바로 리더의 역할이다. “아니, 예수님도 부처님도 하기 힘든 일을 어떻게 리더라고 다 해야 하나”라고 반문하겠지만, ‘잘해야 본전’이고 ‘뒤에서 욕 먹는 자리’가 바로 리더이기 때문이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직장에서 승진을 의미한다. 권한도 커지고 그에 따른 책임도 커지기에 어찌 보면 ‘고위험 고수익’ 주식과 같은 것이다. 1년 내내 상종가를 치면 좋겠지만 그건 꿈이다. 그저 대박은 고사하고 살 때보다 연말 결산 시 조금이라도 오르면, 깡통 주식만 되지 않아도 성공한 셈이다. 이 상승 그래프는 분명 리더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그릴 수 없다. 부서원 모두의 공감 그리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행동이 모아져야 된다. 그 공감의 원인 제공은 오롯이 리더의 몫이다. 나중에 부서원들의 자질, 능력, 학력 기타 등등 수많은 이유와 핑계를 늘어놓아도 위에서는 ‘리더의 자격 미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에서 수많은 영웅과 리더들이 명멸했다. 그들과 함께 왕조와 제국이 만들어지고 역사와 신화가 탄생했고 우리는 그 기록에서 다양한 리더십을 학습하고 교훈을 얻는다. 물론 국가를 세우고 제국을 통치한 그들의 리더십은 직장인 리더십과는 ‘사이즈’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귀천, 빈부, 계급에서 차이가 있다 해도 리더십 역시 사람과의 관계다. 그것이 정밀하게 보면 ‘나와 너, 나와 너희들’과의 관계 유지다.

역사적 인물들은 다양한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그 속에서 명군, 성군도 탄생했고 폭군과 혼군도 있었다. 역사의 평가 자체가 성공한 리더십과 실패한 리더십인 셈이다. 우리는 흔히 성공 리더십으로 촉나라 유비와 한나라 유방을 꼽고, 실패 리더십으로 진시황과 초나라 항우를 꼽는다. 물론 이 기준이 창업에 성공하고 그 창업 회사가 몇 백 년을 존속할 수 있었다면 성공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창업 리더십과 수성 리더십은 달라야 하고 한 인물도 이 두 가지 국면에서 전혀 다른 리더십을 보여 준다.

리더십은 크게 두 가지다. 신뢰와 소통의 리더십 그리고 의심과 오만의 리더십이다. 어떤 것이 더 우월한가 하는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있지만, 이 두 가지의 리더십 모두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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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만의 작은 성에서 시작한 리더십

신뢰와 소통, 이 리더십은 이른바 성공한 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미덕이다. 부하들과 격의 없이 소통한다는 것은 그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귀가 열려 있고 부하들을 대할 때 말 위에서 내려와 그들과 눈높이를 같이 한다는 뜻이다. 그 옛날, 군주란 ‘하늘에서 점지한 하늘의 아들’이라 여겼던 시대에 부하들은 군주의 작은 퍼포먼스, 배려에도 쉽게 감동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 신뢰와 소통 리더십의 가장 성공 모델로 들 수 있는 이는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다. 알렉산더 제국과 로마 제국을 뛰어넘는 제국이 바로 원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제국의 시발점은 칭기즈 칸이었다. 하지만 국가의 형태를 만들고 지속 가능한 통치 시스템을 완성한 이는 칭기즈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다. 그는 정복과 지배의 통치, 즉 힘과 공포 대신 포용과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360년간 지속된 원 왕조에서 유일한 안정기는 그의 재위 기간 34년뿐이었다.

인구 100만 명과 수만 기병의 몽고족. 여러 부족으로 분열된 몽골족은 칭기즈 칸에 의해 통합되어 주변을 정복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그들은 항복하면 살려 주고, 저항하면 한 도시를 잿더미로 만드는 초토화 전술로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문맹에 유목민의 특성을 갖고 있던 몽골은 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제도나 경험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그 땅을 휩쓸고 소수의 몽골족을 지배자로 남겨 놓은 다음 그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적은 수의 몽골족은 다수의 중국 한족에게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칭기즈 칸과 후계자들은 몽골의 전통을 따라 그저 정복만을 거듭했다. 하지만 쿠빌라이는 달랐다. 그는 처음으로 소수 몽골족으로도 통치가 가능한 국가의 틀을 만들었다. 그로 인해 원나라는 비로소 이민족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고 통치한 왕조로 역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쿠빌라이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 신뢰와 통합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버려졌고, 형제에게 도전받았으며, 친척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고립무원에서 황제가 되었다. 작은 영지에서 출발해 북중국을 경영하고 대리국을 정복하고 마지막 남송을 무너뜨리기까지, 그는 한 명의 인재도 받아들이고 하나의 문화도 파괴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자산으로 가치를 부여했다.

쿠빌라이의 시작은 인구 1만 명의 작은 영지였다. 삼촌 오고타이는 쿠빌라이를 하북의 작은 성, 형주로 쫓아 보냈다. 쿠빌라이 역시 실망했다. 하지만 그는 영지 1만 명 백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이 작은 시작이 훗날 그가 강력한 리더십을 갖게 한 초석이 되었다. 형주에서 그는 경영과 리더십을 예습한 것이다. 이 경험이 바탕이 되어 자신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한족과의 아름다운 동거’를, 즉 원나라의 통치의 근본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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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소통, 믿음으로 하나가 되는 비결

직장에서 능력에 비해 한직이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크게 생각해야 한다. 직장에는 분명 엘리트 출세 코스가 존재하지만 이 속도 제한 없는 ‘아우토반’ 같은 도로는 분명 하나뿐이다. 대부분은 비포장도로다. 이 비포장도로에서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엔진의 힘을 단련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작은 일, 빛나지 않는 일도 엄연히 직장 일이다. 조직은 쓸모 없는 부서를 운영하지 않는다. 성과가 빛나는 부서도 있지만 그 빛을 더 돋보이게 하는 부서의 일도 있다. 그곳 역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다. 엔진의 힘을 시험하고 경험을 축적하는 것, 체력을 비축하고 예습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쿠빌라이는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고 황제가 되었다. 그는 중국식 체제를 도입, 통합의 정치를 시작했다. 쿠빌라이는 배려와 포용으로 다른 민족, 다른 종교를 처벌하지 않았다. 출신을 따지지 않고 중용했다. 그의 옆에는 몽골인, 색목인, 중국인, 위구르인, 티베트인 등 다양한 인종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쿠빌라이는 남송의 찬란한 문화, 경제, 정치, 학문과 유학자, 유서 깊은 문화의 창조자인 인재들을 그대로 보존했다. 그래서 쉽게 끝낼 수 있는 전쟁을 서서히 이끌었다. 이 전쟁은 이긴 자도 진 자도 뚜렷하지 않은 통합의 전쟁이었다. 쿠빌라이는 유학자에게 정치적 자문을 얻었고 재무 담당으로 이슬람교도를 임명했다. 이처럼 그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한편으론 쿠빌라이는 고민했다. 제국 경영의 경험이 없는 몽골족이 중국의 국가 통치 체제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운영하면 시스템은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거대한 한족에 동화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무력으로 백성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편다면 소수의 몽골족이 특권을 누릴 수는 있지만 수백 년 지속되는 왕조를 완성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쿠빌라이는 정복 군주 시대를 마감하고 통치 군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상대를 껴안고 함께 살아가는, 정복하되 지배하지 않고 ‘신뢰와 소통의 리더십’을 실천한 것이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부서원 모두에게 신뢰를 주고받고 또한 그들과 소통해야 된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호불호, 학연, 인연을 능력과 인격보다 앞세우거나 공정하지 못하면 결코 성과를 내는 리더십을 보여 줄 수 없다. 개인적인 감정이 내재된 지시나 명령은 조직과 스스로를 좀먹는 리더십이다. 물론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주어진 시간 안에 성과를 내기 위해 자신의 측근들을 기용해 부서를 이끌 경우 일정한 성과를 낼 수는 있지만 그 측근들과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직장 생활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 어쩌면 성과보다 더 큰 ‘믿음’을 얻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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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으면 쓰지 말고, 기용하면 믿어라

실패 리더십의 전형은 바로 항우다. 항우는 정말 좋은 조건을 갖춘 인물이었다. 타고난 금수저에 육체적으로도 완벽했다. 그가 창을 한 번 휘두르면 적들은 낙엽처럼 쓰러졌다. 이른바 ‘일대일’ 전투에서 져 본 적이 없는 무적 캐릭터인 셈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용맹한 강동 8000명의 병사들이 있었고 참모에 명장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항우는 술 먹고 건달 짓이나 하던 유방에게 죽임을 당했다. 무엇이 이 완벽한 남자 항우를 무너뜨렸을까.

그 답을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자신의 분신 같은 부하들과 아버지와 같은 범증조차 의심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사랑했다. 무술, 외모, 체격, 머리, 출신 성분 등에서 항우는 ‘올 A’였다. 그것이 항우를 오만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주위에서 옳은 소리를 해도 그는 오로지 ‘자신’만을 믿었다.

항우는 기병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천하의 패권을 장악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범증이 그토록 죽이자고 한 유방을 ‘불쌍해서’ 혹은 ‘자신의 관용을 자랑하고 싶어서’ 살려주었다.

그리고 항우는 정복한 진나라를 3개로 나누었다. 제나라, 조나라, 양나라로, 각각 진영, 팽월 등에게 다스리게 했다. 하지만 이들은 부임하자마자 반란을 일으켰다. 물론 이 부하들도 야망이 있었겠지만 애초에 믿지 않으면 맡기지 말았어야 했다. 항우는 이들을 끊임없이 의심했다. 항우는 이 반란군을 진압하는 데 자신의 힘을 소비했다. 더구나 그는 잔인했다. 항우는 진압 과정에서 무자비한 살육을 단행했고 백성들을 엄격하게 다루었다. 민심은 항우를 떠나기 시작했다.

항우는 영웅이었다. 그의 휘하에는 환초, 영초, 종이매, 계포, 용저, 사마흔, 동예 등의 명장이 즐비했지만, 항우가 믿은 유일한 무리들은 자신과 같은 핏줄인 항 씨뿐이었다. 항우가 의지하고 따랐던 범증마저 마음으로 믿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은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형양에서 항우와 대처하며 위기에 빠진 유방은 항우에게 협상을 제안했다. 유방을 찾은 항우의 사신은 사사건건 푸대접을 받았다. 유방의 책사였던 진평은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항우의 사신을 맞아 계속 범증의 안부만 물었다. 그러자 사신이 “나는 초패왕의 사신이다”라고 하자 상을 치워 버렸다. 몇 번에 걸친 이 같은 행동을 사신은 항우에게 알렸다. 항우는 의심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그는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범증을 버렸다. 범증은 고향으로 낙향하면서 분통이 터져 병을 얻고 죽고 말았다.

항우는 영지도 호불호에 따라 지급했다. 그러니 부하들도 전쟁터에서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처음 항우가 거병을 하고 세력을 규합할 때 천하의 인재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장량, 한신, 진평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항우는 이들의 능력을 검증할 인품과 포용력을 갖추지 못했고 이들은 모두 유방에게 넘어가 항우를 쓰러뜨리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믿지 않으면 쓰지 말고 이왕 썼으면 철저히 믿어라.” 리더가 갖추어야 할 절대 덕목이다. 먼저 믿지 않으면 상대도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항우는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했다. “내가 군사를 일으킨 지 8년이 지났다. 그동안 70여 회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모든 싸움에 이겼으니 천하가 이제는 나를 제대로 알 것이다.” 한마디로 자만심, 공명심이다. 자만심에 사로잡힌 리더는 치명적이다. 그는 우선 듣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보다 한 수 아래라고 판단한 참모들의 조언을 들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러니 모든 결정을 혼자서 하고 그것이 계속되면 인재는 자연스럽게 그런 리더를 떠나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도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 작은 지혜도 모이면 큰 지혜의 강을 이룬다. 항우는 리더로서 수많은 장점이 있었지만 의심과 불통의 리더십으로 결국 역사의 패자로 기록되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우리는 배운다. 신뢰와 소통, 가장 쉽지만 그래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리더십이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17호 (20.02.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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