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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韓학생 문의는 줄고, 中유학생은 못 받아”…‘우한폐렴’에 대학가 하숙·원룸촌 주인들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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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폐렴 사태’가 바꿔놓은 대학가 하숙·원룸촌 풍경
손해나도 中유학생은 안 받아…계약 성사돼도 매물 취소
엎친 데 덮친 격, 대학 개강 연기에 韓 학생 문의도 줄어
"장사도 안 되는데 불안함까지" "2월 말에 이런 적 처음"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서문 일대 하숙·원룸촌. 건물마다 ‘빈방 있음’ ‘공실’이라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3월 개강을 2주 정도 앞둔 시기, 평소라면 새로운 학생들의 입주와 방 문의로 분주해야 할 이곳이지만 동네엔 적막감만 감돌았다.

‘우한 폐렴’(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학가 인근 하숙·원룸촌 주인들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개강이 연기되면서 한국인 학생들의 신학기 거주 문의는 줄었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중국인 유학생들은 받지 않고 있어서다. 우한 폐렴이 ‘신학기 대목’이었던 대학가 하숙·원룸촌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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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서문 일대 하숙·원룸촌의 모습. 휑하고 적막감이 감돈다. 한 원룸 건물에 ‘공실’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정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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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서…" 중국인 유학생 안 받는 대학가 하숙·원룸촌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은 1만9000명가량이다. 이 가운데 9000명가량이 입국 후 14일을 넘기지 않았고, 앞으로 5만 명 정도가 더 입국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대학에 중국인 유학생이 원할 경우 기숙사에 수용하고 ‘1인 1실 배정’을 원칙으로 하라고 권고했지만, 서울 주요 대학 대부분은 중국인 유학생 전원을 기숙사에 수용할 여건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최소 1만4000명의 중국인 유학생이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학 기숙사가 수용하지 못하는 유학생들은 대학 인근 하숙이나 원룸을 구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하숙·원룸촌 주인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중국인 유학생의 입주를 꺼리는 분위기다. 신촌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매물을 내놓는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 A씨는 "원룸이나 하숙 등 주인 분들이 중국인 유학생이 계약하기로 했던 매물을 취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아무래도 불안해하시는 주인 분들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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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인근의 한 자취방. ‘투룸 공실 있습니다’라고 쓰인 안내문을 대문 앞에 내걸고 있다. /정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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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서 하숙을 놓는 강모씨는 "우한 폐렴 사태가 일어난 뒤 중국인 유학생 4명이 하숙을 원했지만, 방학 동안 중국에 다녀오지 않은 딱 한 사람만 받았다"며 "괜히 받았다가 확진자나 의심 환자가 우리 건물에서 생기면 어쩌나. 중국인을 받으나, 안 받으나 영업 손해가 나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주인 B씨는 "주변 사장님들과 만나면 경기가 안 좋아서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되는데 불안하기까지 하다는 얘기만 한다"고 털어놨다.

짐만 두고 비어있는 중국인 유학생의 방도 부지기수다. 방학 동안 잠시 고향으로 갔다가 개강 시기에 맞춰 다시 돌아올 예정이었던 유학생들이 중국 현지의 출국 금지나 국내 대학의 격리 조치 등에 반발해 입국을 미루면서 생긴 일이다. 하숙집 주인 C씨는 "입주자 절반이 중국인 유학생인데, 다 입국을 못 해서 짐만 방에 한가득 쌓여있다"며 "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받지도 못해서 곤란하다"고 했다. 중국에서 월세를 계속 내고 있거나, 계약금을 포기하고 방을 아예 취소한 중국인 유학생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개강 연기 겹치면서 한국인 학생까지 문의 ‘뚝’
이런 가운데 대학 개강이 연기되면서 한국인 학생들의 문의까지 줄어든 상황이다. 최근 교육부는 중국인 유학생 입국으로 우한 폐렴 확산 우려가 커지자, 대학 개강을 최대 4주까지 연기하라고 권고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코로나19 관련 대학 개강 현황’을 집계한 결과, 4년제 대학 193곳 중 176곳(91.2%)이 개강을 연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약 80%에 이르는 대학이 개강을 2주 뒤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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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찾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인근의 한 하숙집 건물 앞에 손 세정제가 비치돼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비밀번호, 문고리는 손을 세정제로 닦은 뒤 사용하라는 내용의 종이가 함께 붙어 있다. /정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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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동안 신촌에서 하숙집을 운영한 D씨는 "개학이 연기되면서 빈방을 물어오는 학생이 확실히 줄었다"며 "중국인도 못 받아서 하숙은 지금 딱 단절됐다. 이때쯤 되면 신학기라 들고 날고 하는데, 아예 전화도 한 통 없다"고 말했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김모씨도 "방 12개 중 5개가 공실이다. 방학도 아니고 2월 말에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중국인 유학생을 피해 한국인 학생들이 방을 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달 초 신촌에서 하숙집을 구해 살던 이화여대 학생 김모(21)씨는 "2층짜리 하숙집이었는데, 2층에 중국인 유학생 두세 명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화장실, 샤워실, 세탁기, 주방 모두 공용이라 너무 불안해서 한 달만 살고 나왔다"고 말했다.

[박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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