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8 (화)

곽신애 대표 "오스카상, 20년간 잘 버텼다는 뜻이라고 생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기생충'이 한국 영화사에 갖는 의미는 스포트라이트의 적절한 분배라는 점에서도 짚어볼 수 있다. 감독과 배우에게만 집중되던 영화의 영광을 미술팀, 편집팀 등 제작진에게 골고루 나눠준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작사 이름이 대중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2015년 봉준호 감독과 처음 '기생충' 제작을 논의한 이래 오스카 대장정까지 함께한 바른손이앤에이다.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52)는 2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5년 전 봉 감독이 건넨 시놉시스를 읽은 뒤 '칸 경쟁부문 가겠다'고 직감했다"고 밝혔다.

그의 감은 정확했다. '기생충'은 칸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지난 9일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해 수상 부문만 185개에 달한다. 그가 펼쳐 보여준 다이어리엔 별 모양 스티커가 가득했다.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받았을 때마다 그 개수에 맞춰 붙여둔 스티커다. 그런 꼼꼼함이 프로듀서로서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곽 대표는 봉 감독이 처음 시놉시스를 건넨 날짜를 '2015년 4월 18일'로 정확히 기억한다. 다이어리에 수기로 적어둔 덕분이다. '기생충'의 경우 자신 몫으로 추천해야 할 주요 스태프를 예산, 경험치, 평판을 기준으로 엑셀 파일로 정리해 봉 감독에게 전달했다. 영화밥 20년 먹은 봉 감독도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생활 루틴을 바꿔보자고 마음먹었을 때가 있었거든요. 새로운 습관을 장착하면 인생이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기도 하잖아요. 그중에 효과가 좋았던 게 메모였어요. 매년 똑같은 다이어리를 사서 중요 사건들을 기록해요."

봉 감독이 아무 불편 없이 작품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게 곽 대표 목표였다. "봉 감독님이 '기생충은 다른 작품에 비해서 후회가 없다'고 말씀해주셔서 좋아요. 제작자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죠."

그는 '기생충'이 감독상 수상작으로 불린 직후 작품상을 예측했다고 한다. 오스카 캠페인을 8개월 경험한 그만이 체감할 수 있는 기세가 있었다고.

"제가 미국에 가서 1월 5일에 첫 시상식에 참석한 이래 모든 행사에서 '기생충' 테이블이 너무 붐비는 거예요. 우리에게 다가와서 '사진 찍자'고 하는 눈빛에서 '기생충'을 정말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실제로 영국아카데미나 몇몇 시상식에서 수상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 영화를 좋아해줬던 사람들이 '혹시 기생충이 오스카에서 상을 하나도 못 받고 가면 어떡하지' 걱정한 것 같아요. 그래서 '봉준호' 이름이 들어간 부문에 전부 투표한 거죠. 그걸 세 번째 상인 감독상까지 받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실제로 봉 감독은 자신 이름이 들어간 네 개 부문에서 모두 수상했거든요."

이미경 CJ 부회장의 작품상 수상 소감은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CJ에도 '기생충'을 위해 뛴 수많은 스태프가 있는데,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도 한번쯤 발언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인생은 온통 영화로 물들어 있다. 오빠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며, 남편은 '은교'의 정지우 감독이다. 자신은 영화잡지 '키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영화 홍보대행사와 제작사를 두루 거쳤다. 영화 전 필드를 아우르는 경력 덕분인지 영화를 작품으로서 분석하는 눈과 상업성을 더하는 두 부분에 모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전히 남성 위주인 충무로에서 그의 존재는 여성 영화인에게 힘이 되고 있다. 92년 오스카 역사상 아시아 여성 프로듀서가 작품상을 받은 건 처음이란다. 여성영화인모임은 곽 대표에게 지난해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제작상을 수여했다. "처음 제 이름을 올린 작품이 1999년 '해피엔드'인데요. 그때 제 배 속에 있던 애가 이제 스무 살이 됐어요. 제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 세월 동안 잘 버틴 거다. 현역이다 아직까진' 그 뜻이라고 생각해요."

[박창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