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사주를 받아 사람을 찔러 죽이는 자객(刺客), 무서운 말이다. 2005년 9월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우정민영화에 반발해 탈당했던 중진의원들의 지역구에 여성 관료, 유명 여배우, 아나운서 등을 내보냈다. 일본 언론은 이를 ‘자객 공천’으로 이름 붙였다. 고이즈미의 자객 공천은 총선판을 흔들어 자민당의 압승을 이끌어냈다.
일본의 ‘자객 공천’이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부산 사상에서 펼쳐졌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표는 야권의 대선주자인 문재인 후보에 맞서 20대 손수조 후보를 ‘자객’으로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20대 총선 때도 새누리당은 “국정의 발목만 잡던 야당 의원 지역구에 ‘킬러’를 투입”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표적 공천 자체가 상대가 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기에 걸맞은 지명도와 참신성, 특장을 갖추지 못하면 역부족이기 십상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공히 자객 공천을 벼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미래통합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출진한 서울 광진을에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내세우고, 미래통합당은 ‘문재인의 남자’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나선 구로을에 불출마를 선언한 김용태 의원을 출격시키는 식이다. 1967년 7대 총선 당시 박정희 정권은 “김대중을 막을 수 있다면 여당 의원 20명이 떨어져도 상관없다”며 온갖 무리수를 동원했다. 아직도 자객·킬러 공천, 경쟁 상대의 정치 목숨을 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무협 세계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 같아 으스스하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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