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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그는 살기 위해 '예술'이란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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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레이노展]

대형 화분 '빅팟'으로 유명한 프랑스 개념미술가 개인전

총알 관통한 도로표지판 작품… 신작 '발사' 연작 국내 첫 공개

"전쟁 후유증으로 병원 전전… 예술 통해 난 새로 태어났다"

조선일보

프랑스 작가 장 피에르 레이노 뒤편에 산탄총을 쏴 제작한 신작 '발사' 연작이 보인다. /갤러리508


탕, 그가 산탄총을 쐈다.

프랑스 개념미술가 장 피에르 레이노(81)는 지난해 작업실 근처에 고속도로 표지판을 세워두고, 10m 뒤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두께 2㎝의 금속 표지판을 뚫고 나간 총알은 둥근 흉터를 남겼다. 파괴가 낳은 터널은 역설적으로 과녁 너머의 공간을 드러낸다.

그의 개인전이 서울 청담동 갤러리508 개관 기념전으로 3월 28일까지 열린다.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최신작 '발사' 연작을 포함해 대표작 30여점을 선보인다. 총은 전쟁의 기억과 관련이 있다. "원예학을 전공했다. 시골 정원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다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3년간 전장에 머물렀다.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너무 지쳐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았다. 1년간 병원을 다니며 치료받았다. 그때 처음 예술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1962년, 집 안에 있던 화분을 만지작거리다 흙 대신 시멘트를 채웠다. 이른바 '화분' 연작의 탄생이었다. 이는 대형 화분 '빅팟(Big pot)'으로 발전해 1993년 중국 자금성 안에 생존 작가로는 처음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후 도자기 타일에 푸줏간 고리 등을 달아놓은 '타일' 연작이나, 페인트통 여러 개를 연결해 색을 칠한 '회화' 연작 등 일상의 단출한 기성품을 비틀어 삶과 죽음을 환기하는 작품을 제작해왔다. 이윽고 총으로 나아간 것이다. 갤러리 측은 "초창기엔 생명의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예술성을 표출했다면, 이제는 총을 사용하면서도 죽음이 아닌 내면의 생성을 향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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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레이노를 대표하는 '화분' 연작. /갤러리508


최근 방한한 그는 "흑과 백의 대비, 고요라는 아시아의 가치에 큰 애착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 역시 명상적이다. 도로 표지판에 기호를 그려넣은 '과녁' 연작도 그 연장선이다.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길 때, 명중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쏜다'는 행위만 남는다. 그렇기에 "과녁은 항상 당신 자신"이 된다. "나는 예술을 통해 비로소 새로 태어난 느낌을 받았다.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것은 어린 시절을 되찾는 것이었다. 모두가 자기 안의 것, 사회가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을 진실로 표현하길 바란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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