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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입양된 남동생은 왜 죽음을 선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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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쓴 한국계 작가 패티 유미 코트렐

같은 집으로 입양된 남동생 자살의 흔적 추적해가는 소설

‘모든 자살의 이면에는 문이 있어. 그 문을 열면 결코 알고 싶지 않은 것들과 마주치게 돼.’

조선일보

코트렐은 "주인공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살아가는 인물"이라며 "그 점은 나와 비슷하다"고 했다.


소설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비채)은 남동생의 자살을 조사하는 누나 헬렌의 이야기다. 헬렌과 남동생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됐다. 둘은 원한 적도 없는 나라에 보내진 게 못마땅했고, 가끔은 백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누가 국적을 물어보면 '입양아'라고 대답해버렸다. 헬렌은 집으로 돌아가 동생이 왜 극단적 선택을 해야 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이 소설의 작가인 패티 유미 코트렐(39)은 미국 대형 서점인 반스앤드노블 디스커버상, 떠오르는 젊은 작가에게 주는 화이팅(Whiting) 어워드를 수상하며 영미권에서 주목받고 있다.

코트렐도 1981년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됐다. 코트렐의 양부모는 한국에서 남자아이 둘을 더 입양했는데 둘 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코트렐은 소설을 자서전처럼 읽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지난 11일 이메일로 만난 그는 "소설이 내 삶과 얼마나 비슷한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중요한 건 내용보다 제가 이 글을 쓸 때 어떤 마음이었느냐는 것이죠. 제가 동생을 무척 사랑했고, 동생도 역시 저를 무척 사랑했다는 사실도요. 사람들이 이 책에 빠져든 건 현실에서 우러나온 진짜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요."

죽음의 이유를 찾으려 시작한 조사는 결국 삶의 이유를 찾으며 끝난다. 소설 속 헬렌은 자신의 조사 목적을 이렇게 밝힌다. "내 조사 목적은 동생의 삶에 난 구멍과 틈, 어지럽게 널린 파편, 기묘한 일들 등등에 빛을 비추는 것이었다. (…) 그 애의 삶을 이끈 근본적인 힘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동생의 흔적을 좇던 헬렌은 자신이 몰랐던 모습들을 발견한다. 동생은 친모를 찾기 위해 한국에 다녀왔고, 자신의 물건들을 이웃에게 나눠주며 마지막을 철저히 준비했다. 코트렐은 "가족의 죽음에 대한 소설보다는 자신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내던져진 서툰 탐정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코트렐은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자율형 공립학교(차터 스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글을 썼다. 짧은 시로 시작해 산문시에서 우화, 소설까지 점점 긴 글을 써나갔다. 그는 아직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언젠가 한국에 와서 가족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항상 과도기에 있는 것 같고, 잠깐 머무는 체류자처럼 느껴졌어요. 어디에도 속해 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아웃사이더라는 위치가 놀라운 힘이자 자산이 됐죠."

그는 자신의 소설을 “슬픔을 담은 명세서”라고 표현했다. “그 명세서에는 슬픔뿐만 아니라 제 삶에서 길어 올린 기뻤던 순간, 경이로웠던 순간들이 담겨 있어요. 소설을 쓸 때는 제 인생의 끝없는 절망 속에서 기쁜 순간들을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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