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만경강이 품고 키웠다, 기운 돋우는 '알싸한 맛'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그곳의 맛] [19] 완주 생강

실핏줄처럼 흐르는 물길따라 재배… 농가 800곳서 100억대 매출 올려

완주군·도내 연구기관 힘 합쳐 생강 카스텔라·캐러멜 등 개발

수확 체험 등 관광 코스도 준비중

이순신 장군은 1597년 4월 22일 전북 완주를 거쳐 전주에 머물렀다. 옥고를 치르고 백의종군하던 때였다. 완주에 오기 8일 전 모친상까지 치른 터라 심신이 지쳐 있었다. 이날 전주부윤 박경신이 봉상(鳳翔·완주군 봉동읍의 옛 지명)의 특산품인 생강을 이순신 장군에게 보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남해까지 가야 했던 이순신 장군은 생강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 이순신 장군은 이날 '난중일기'에 "4월 22일 맑음. 판관 박근이 와서 만났고, 부윤도 후하게 대접해주었다. 유둔(기름종이)과 생강 등을 보내왔다"고 썼다.

조선일보

지난 14일 오후 전북 완주군을 굽이도는 만경강 너머로 겨울 해가 지고 있다. 제방 너머 비닐하우스와 밭에서 만경강 기운을 품은 생강을 기른다. 만경강이 수차례 범람하며 만들어진 토양은 비옥하고 물 빠짐이 좋아 생강을 재배하기에 좋다. /완주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7세기 허균이 쓴 '도문대작'과 허준의 책 '동의보감'엔 "봉상 생강이 으뜸", "생강은 오직 봉상에서 많이 난다"고 적혀 있다. 1930년 국내 최초로 생강조합을 구성한 곳도 완주군이다.

지난 10일 찾아간 완주군 봉동읍의 한 생강굴엔 겨우내 파종을 기다리는 생강 종자가 보관돼 있었다. 완주의 온돌식 생강굴은 고온성 작물인 생강의 종자를 겨울에 보관해야 하는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한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전통 농업 방식이다. 구들장 밑으로 '고래'라 불리는 고랑을 파서 저장굴을 만들고 아궁이의 열기로 바윗돌을 데워 온도 14도로 유지한다. 생강을 저장하기에 딱 좋다. 이곳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수평식 생강굴이 있다. 온돌식과 달리 구릉지 하부에 수평으로 '왕(王)' 자 모양의 굴을 파서 만들었다. 완주에 있는 전통 생강굴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좋다. 생강굴 주인 전승영(48)씨는 "전통 방식으로 보관한 생강 종자로 농사를 지으면 병충해에 강하고, 맛과 효능도 좋아진다"고 했다.

조선일보

완주군엔 이런 생강굴이 865개나 된다. 봉동을 중심으로 온돌식 생강굴(508개)과 수직강하식(336개), 수평식(21개) 등이 다양하게 분포해 있다. 온돌식 생강굴의 깊이는 150~200㎝에 이르며 굴의 길이는 330~500㎝ 정도다. 약 992㎡(300평) 규모의 생강 농사를 짓는 농가에 알맞은 저장 용량이다. 1930년대 이후엔 대규모 생산이 이뤄지면서 생강 저장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구릉지대에 있는 황토 지형을 활용해 5~7m 정도 깊이의 땅을 파고 생강을 저장하는 '수직강하식 생강굴' 등으로 발전했다. 완주의 온돌식 생강굴은 지난해 11월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3호로 지정됐다.

고산천과 소양천, 전주천이 만나 이룬 만경강은 겨우내 묻혀 있던 생강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실핏줄처럼 뻗은 수로를 따라 물줄기가 마을 곳곳을 지나면서 생강과 같은 원예농업을 하기에 적당한 토양을 만들었다. 자갈층이 여러 번 겹쳐 있어 물 빠짐도 좋다.

완주군 생강 농가 803곳은 지난 2018년 2198t을 생산해 109억9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5년 사이 가구당 생강 농사로만 연평균 1300만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완주의 생강 가공·유통 업체에서는 다양한 생강 가공 상품을 개발해 농가 소득 증대에 이바지하고 있다. 생강 가공 공장 6곳은 지난해 매출 718억원을 기록했다. 편강, 다진 생강, 생강즙을 넣은 각종 진액을 만들어 판다. 최근엔 김장용 다진 생강이 많이 팔린다.

최근 완주군은 생강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도내 연구기관과 손잡고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생강 카스텔라, 생강 캐러멜, 생강 달고나를 개발했다. 생강 카스텔라는 완주 생강과 국내산 쌀을 혼합해 만들었다. 알싸하고 달콤하면서 쫀득하다. 이용국 완주생강보존위원회 위원장은 "생강은 조선시대 임금의 하사품이자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으며, 몸에 원기를 돋게 하는 귀한 약재였다"며 "수백 년 넘게 전통 생강 농업을 이어온 완주의 생강 맛은 타 지역에서 따라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완주군은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을 계기로 생강 저장굴을 보존하는 프로젝트를 조만간 시작한다. 전통 생강 농법과 관련된 유물과 자료를 수집하고, 농업 문화 유물과 생강 가공 식품 등을 전시할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생강을 직접 수확해 보는 체험, 생강 식음료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도 만든다. 박성일 완주군수는 "봉동 생강의 옛 명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완주를 대표하는 명물로 육성하는 일이 중요해졌다"며 "완주 생강이 지역 대표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도록 10만 군민의 지혜를 모으겠다"고 말했다.

[완주=김정엽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