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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동기부여와 내부경쟁의 미묘하지만 치명적인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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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9] 춘추시대 초기 패자를 자임했던 정장공 얘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경영학에서 조직행동론을 논할 때 재미있는 사례가 될 만한 일화입니다. 동기부여와 내부경쟁의 미묘하지만 치명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이죠.

정장공은 제나라와 의기투합해 송나라를 정벌할 때 동조하지 않은 국가들을 혼내주기로 했습니다. 허나라와 성나라가 표적이 됐습니다. 제나라가 성나라를 치고 정나라가 허나라를 치기로 한 겁니다. 사건은 거사를 앞두고 정장공의 괜한 호기심에서 비롯됐습니다.

허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군마를 사열하며 정장공은 큰 수레에 매달려 있는 대형 깃대를 봅니다. 쇠사슬에 묶인 깃대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길었고 무거웠습니다. 정장공은 장수들 가운데 깃대를 들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약속을 합니다. "손으로 저 큰 깃발을 잡고 평상시처럼 걸을 수 있는 자를 선봉장으로 삼고 그에게 임금이 타는 큰 수레 1대를 하사하겠다."

이에 하숙영이라는 장수가 먼저 나섭니다. 그는 한 손으로 깃대를 잡고 세 걸음을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고 나서 다시 수레에 세웠습니다. 장공은 물론 병사들의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지요. 하지만 깃대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깃대를 잡고 걷는 것은 별 게 아닙니다. 저는 깃대를 가지고 춤을 추겠습니다." 이렇게 큰 소리를 치며 앞으로 나오는 장수가 있었죠. 정장공이 동생 단의 반란으로 관계가 틀어진 어머니와 화해하는 데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영고숙이었습니다. 그는 깃대를 자유자재로 돌리면서 자신의 말을 그대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의 괴력에 놀라 모두 입이 벌어질 정도였죠.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덩치가 큰 소년 장수가 소리를 쳤습니다. 요즘 아이돌같이 잘생긴 미남이었습니다. 군주와 피를 나눈 공족으로 장공이 총애하는 청년 공손알이었습니다. "그대가 한다면 나도 깃발을 들고 춤을 출 수 있소. 하사품인 큰 수레를 그대로 두시오." 바로 그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집니다. 영고숙이 깃대를 손에 든 채 장공이 하사한 수레를 몰고 연병장 밖으로 달아난 것입니다. 공손알에게는 하사품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죠. 그러자 공손알이 바로 추격했고 두 사람은 큰 길에서 일전을 벌일 태세였습니다. 정장공이 사람을 보내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었죠.

장병들의 사기를 돋우고 뛰어난 장수를 선발하려고 내놓은 하사품으로 난리가 벌어지자 정장공은 깃대를 들어 올린 하숙영과 영고숙, 공손알 모두에게 큰 수레를 주는 것으로 그날 행사를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그날의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달은 허나라 성을 공격할 때 일어납니다. 선봉장이었던 영고숙은 정장공의 깃발을 들고 가장 먼저 허나라 성벽에 올라가 적을 무찌릅니다. 이를 보고 있던 공손알이 영고숙의 공을 시샘해 아무도 모르게 화살을 쏩니다. 활살은 영고숙의 몸에 그대로 명중했습니다. 뛰어난 장수이자 지혜가 출중했던 영고숙은 그렇게 세상을 떠납니다. 남 몰래 누구를 헐뜯거나 다치게 한다는 뜻의 '암전상인(暗箭傷人)'이라는 고사성어는 이 사건에서 유래했습니다. 결국 공손알도 억울하게 죽은 영고숙은 혼백의 복수로 그 이후 공을 세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정장공의 잘못된 동기부여 방식으로 훌륭한 장수 2명을 잃게 된 겁니다.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지나치게 내부경쟁을 부추겼던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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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자산업을 대표했던 샤프가 몰락한 원인 중에는 엔지니어들의 과도한 자부심과 내부경쟁이 있었습니다. 물론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도 기술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삼성전자 같은 걸출한 추격자가 있었기 때문이지도 하죠. 하지만 자신이 보유한 기술이 최고라고 여기며 조직 전체를 생각하지 못했던 게 모든 잘못의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적당한 내부경쟁은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힘이 될 수 있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교훈을 정장공의 깃대 대결 장면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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