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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제국 일본에겐 전쟁과 승리의 방정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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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국 일본의 전쟁 1868-1945

박영준 지음/사회평론아카데미·2만5000원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국가를 건설한 뒤 1894년 청일전쟁부터 거의 10년 주기로 전쟁을 벌였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거나 관여한 것이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는 도쿄대에서 근대 일본의 해군 형성과 대외정책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의 정치외교, 동북아 국제관계, 국제안보 등을 연구해온 전문가다. <제국 일본의 전쟁 1868-1945>는 그런 그가 근대 일본 전쟁에 대한 한국 학계의 연구 공백을 메우려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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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전쟁발발의 원인을 인간, 국가, 국제체제라는 세 층위로 나눠 접근한 정치학자 케네스 월츠의 분석 틀에 유념한다. 우선 팽창적 국가전략을 가졌던 일본의 주요 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의 국가 구상과 대외전략관을 검토한다. 당시 군의 실력자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확대가 불가결하다고 했다. 그의 주장은 1894년 조선에서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고 청나라가 군사개입을 하자 일본군이 조선출병을 하게 된 중요한 요인이 됐다. 1931년 만주사변의 도화선은 육군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한 뒤 독일 군사유학을 다녀온 이시와라 간지가 불을 댕겼다. 그는 미국과 일본이 세계의 패권을 놓고 최종전쟁을 벌이게 될 때를 대비해 석탄·철광 등 자원기지 확보가 필요하다는 ‘세계최종전쟁론’을 주장했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에는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가 개입했다. 그는 일본 중심 세계질서인 ‘동아 신질서’를 꿈꾸었고, 그의 아버지는 러일전쟁 때 개전론을 주장한 황실 측근 귀족 고노에 아쓰마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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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에서 군사전략과 제도를 보면, 일본은 한반도에서 다른 나라와 맞붙을 때 육해군이 어떤 군사적 역할을 해야 하는지 촘촘한 전략을 세웠다. 독일 군사교관을 초빙해 근대적 군사교육을 했고 프랑스 총을 모델로 한 신식 무기 무라타 소총을 1880년 만들어 개량했다. 개량형 무라타총은 사정거리가 2400m나 됐고 1889년 개발한 무라타 연발총이 근대적으로 편제한 사단에 보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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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와 다툴 때 일본은 미카사 등 1만2천 톤급 전함 6척을 포함한 군사력을 갖췄다. 만주사변 때 이시와라 간지 등은 중국 군벌을 제압할 군사적 방책을 속속들이 강구했으며 공군기를 동원해 진저우 지역에 전략 폭격을 감행했다. 태평양전쟁 때는 독일에서 노획한 잠수함을 분해 조립한 뒤 1926년 독자 잠수함 이고우 1호를 건조하는 등 전함 및 함상전투기 등의 전력증강에 착수한다.

전쟁은 ‘국제체제’ 차원에서 현상유지 세력과 도전하는 세력이 대립할 때 발발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일본의 경우 각 시기 전쟁 도발을 막을 다국간 국제기구나 제3국의 중재가 없었고 일본 자체가 국제질서를 적대적으로 보는 폐쇄적 인식에 머물러 있었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갈피마다 풍부한 정보가 배치돼 전문 연구자나 ‘역사 덕후’가 아니더라도 몰입감이 있다. 하지만 ‘강대국간 무력 충돌’로서 전쟁을 보는 분석이기에 무라타 연발총에 무자비하게 학살당한 동학농민군 등 전쟁 피해자나 식민통치의 피지배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편함도 있다. 피해국에 감정이입한 독자의 어쩔 수 없는 통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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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국가 전쟁>(1959, 한국어판 2007)을 쓴 월츠는 20년 뒤 자신의 저작 <국제정치이론>에서 ‘인간’과 ‘국가’의 이미지로 전쟁 발발요인을 분석할 때 전쟁원인의 중층성과 복잡성을 간과하는 환원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자신의 이론을 비판한 바 있다. 그렇다고 근대 일본 전쟁의 원인을 ‘인간’과 ‘국가’ 차원까지 빼놓지 않고 분석한 이번 책의 의의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현대 동북아 국제관계의 과거사를 밝히고 보편적 가치가 합의되지 않는 동북아의 안타까운 현재를 알아가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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