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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같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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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책읽는사회문화재단 공동기획]

우리 독서 동아리를 소개합니다

⑥ 경기 용인시 독서동아리 ‘에피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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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친구가 있다면 해보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초년생이던 20대 중후반의 다섯 명이 처음 만났을 때 나온 질문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을 자주 듣던 시기였다. 이대로 현실에 적응하는 게 맞는 건지 자꾸만 의문이 들었다. 마음 맞는 친구를 찾았고, 다시 마음 맞는 친구를 서로에게 소개했다. 거창하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우리들이 만든 작은 만남의 이름은 ‘에피쿠’. 우주, 고통, 욕망 등과 관련하여 벗들과 사색하고 철학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본 에피쿠로스 학파의 이름을 귀엽게 줄인 것이었다. 우리들은 만나서 혼자서는 어렵거나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상상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주최했다. 혼자라면 엄두가 안 나는 책을 돌려 읽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정기적인 독서동아리가 되었다. 책 속에는 우리가 그리워하던 거창하고 이상적인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단어들을 모으고 한 명당 하나의 단어를 선택했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하오는 ‘가족’, 정치에 관심 많은 하아무개는 ‘북한’, 사회 문제와 경제 문제를 연결하던 챌리나는 ‘자본주의’, 여성의 유리천장에 비판적이던 제니는 ‘페미니즘’, 역사의식을 중시하던 홍차는 ‘위안부’를 선택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문학과 비문학 등 다른 장르의 책 두 권을 선정해 함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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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에서 나눈 대화는 블로그에 ‘월간 에피쿠’로 기록했다. 대화는 공유하면 공유할수록 깊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콜라보 독서모임을 주최하기도 했다. 여성 멤버가 많은 우리는 남성 멤버가 고루 있는 독서 동아리 ‘북괴’와 함께 페미니즘 책을 선정했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통해 현재 사회의 다양한 현상과 그에 대한 느낌을 나누었다. 같이 있어야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 같이 대화해야만 느낄 수 있는 유대감을 경험했다.

나아가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옮겼다.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을 읽고 비건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이영미 작가의 <마녀체력>을 읽고 마라톤에 참가했다. 독립출판사의 책을 읽고 독립서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 명이 한 권의 책을 읽어도 따라 읽고, 한 명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따라 했다. 이 모든 활동의 바탕에는 책이 있었다. 책에는 다채로운 세계가 있고, 우리는 함께할 수 있었기에 기꺼이 그 세계를 함께 탐험하면서 조금씩 변화했다.

우리 모임의 구성원은 모두 사회에 갓 진출한 새내기다. 이 시기의 삶에서 느끼는 것은, 삶이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주 실수하고 그래서 자주 자책하게 된다. 마음의 평안이란 먼 나라 이야기 같다. 그러나 함께 책을 읽고 웃다 보면 평안이라는 게 어렴풋이 느껴진다. 우리는 계속해서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분노와 불의를 마음껏 토로하고, 활자 안에서 찾은 길을 생활 속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혼자라면 포기했겠지만 함께라면 가능하다. ‘에피쿠’가 함께 읽고, 사유하고, 행동하는 이유다.

글·사진 에피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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