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이래 봬도 헤엄 잘 친다고 소문난 멸치였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바닷속 헤엄치는 물고기’ 멸치에 렌즈를 들이댄 그림책

각각의 멸치 ‘살아 있는 표정’…유쾌한 목소리 들리는 듯


한겨레

멸치의 꿈

유미정 글·그림/달그림·1만4000원

물고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덩치 큰 고래나, 날카로운 이빨의 상어다. 작고 떼 지어 다니는 멸치는 아이들의 호기심 그물에 잘 걸리지 않는다. 육수를 낼 때 필수적인 존재지만 어른들에게도 멸치의 존재감은 명태나 고등어 같은 생선에 밀린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루시드폴 <고등어>), “검푸른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가곡 <명태>) ‘친구’들은 깊고 푸른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이미지로 음악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지만 멸치는 반찬과 안주 사이 어딘가, 어중간한 위치에서 떠돈다.

그림책 <멸치의 꿈>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로서의 멸치에 렌즈를 들이댄 책이다. “이래 봬도 헤엄 잘 친다고 소문난 멸치였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유쾌한 멸치의 목소리는 책장을 넘기자마자 읽는 이들을 깊은 바다로 이끈다. 사천구백아흔아홉 번째로 태어난 멸치는 달빛을 쫓다가 고깃배 등불에 속아 속절없이 그물 위로 훌훌 떨어진다. 이때부터 기구한 삶이 시작된다. “아따, 뜨거워 죽겠네!” 팔팔 끓는 가마솥에서, 뜨거운 햇볕에 고초를 겪은 멸치는 키재기를 통해 등급으로 분류되는 굴욕도 겪는다. “똥은 무슨 똥! 내 아무리 작아도 창자는 있다네.”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서 ‘똥을 뺀다고 난리 쳐도’ 멸치는 ‘이제 다 내려놓으니 몸이 가뿐하구나’, ‘빳빳이 마르고 난 뒤에야 다들 울고, 웃고 소리도 치고, 화도 내는구나’라며 관조한다.

머리만 남은 멸치에게 꿈이란 게 있을까? 바다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의 꿈도 사라지지 않는다. ‘바다로 바다로 헤엄쳐 가자! 우리, 바다가 되자!’ 바다와 하나가 되는 멸치를 보며 읽는 이도 자연스레 바다와 하나가 되는 기분을 갖게 될지 모른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멸치 한마리, 한마리에 표정을 불어넣은 그림은 시종일관 유쾌한 주인공(멸치)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진다. 작가는 왜 멸치를 그렸을까? 어떤 생각을 하며 그렸을까? 이 책은 마지막 장 ‘작가의 말’도 눈여겨 봐야 한다.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냉장고에 있던 멸치를 꺼내 들고 한 마리씩 그려보았습니다. 입이 쩍 벌어지고, 구멍이 숭숭 뚫리고, 몸이 뒤틀린 마른 멸치들을 보면서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궁금했어요. 멸치의 작은 몸을 그리면서 생각했어요. 멸치는 마르고 나서야 자신의 몸무게를 느꼈겠구나. 그 무게감 때문에 멸치의 목소리가 더 힘차게 들렸습니다. 제가 그린 멸치가 많은 이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4살 이상.

이승준 <한겨레21> 기자 gamja@hani.co.kr, 그림 달그림 제공

▶네이버에서 한겨레 구독하기
▶신문 보는 당신은 핵인싸!▶조금 삐딱한 뉴스 B딱!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