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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결코 닿을 수 없는 존재들, 멈출 수 없는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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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정여울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

⑫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힘, 그리움

이어지지 못한 인연, 끝내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파괴될 수 있을지언정 절대 멈추고는 살아갈 수 없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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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주인공보다 숨은 조연의 삶이 더욱 궁금해질 때가 있다. 오랫동안 스토리텔링의 주체는 늘 힘 있는 자들의 몫이었기에. 가슴속 사연이 산더미일지라도 한번도 마이크를 쥐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예컨대 <오디세이아>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은 온갖 기지를 발휘하여 장애물을 물리치며 끝내 집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이지만, 나는 이 이야기의 숨은 주인공 페넬로페의 삶이 늘 궁금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리고 얼마나 그리웠을까. 게다가 얼마나 밉고, 억울하고, 울화통이 터졌을까. 작품에는 페넬로페의 복잡한 감정 묘사가 전혀 없지만, 그녀는 결코 수동적이고 고분고분한 아내는 아니다.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오디세우스가 정말로 남편이 맞는지 가장 의심스러운 눈길로 집요하게 관찰한 사람,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때까지 남편을 끝까지 믿지 못했던 사람도 바로 페넬로페이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모험과 승리의 역사이지만, 페넬로페의 이야기는 기다림과 그리움과 견뎌냄의 역사이다. 미치도록 불공평하다. 페넬로페에게는 처음부터 자유가 없었다.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도, 결혼하지 않을 권리도, 남편을 향한 기다림을 포기할 권리도 없었다. 그런데 <오디세이아>를 다시 읽으며 나는 ‘페넬로페의 숨은 이야기’를 짐작하게 하는 강력한 상징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야기는 ‘언어’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사물’로도 남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페넬로페가 구혼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짜고 있던 수의였다. 돌아오지 않는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며, 페넬로페는 수많은 구혼자를 물리치기 위해 ‘시아버지의 수의를 완성한 뒤, 남편감을 결정하겠다’는 영리한 핑계를 댄다. 나는 못내 궁금했다.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마다 그 수의를 몰래 풀어내며 결정의 시간을 유예하는 페넬로페의 가슴속에는 과연 어떤 숨은 이야기들이 굽이치고 있었을까.

페넬로페가 진정으로 그리워한 것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페넬로페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조연에 그칠 수밖에 없는, 중심과 주변 사이를 위태롭게 서성이는 인물이다. <오디세이아>의 주요 서사는 역시 집을 떠난 오디세우스가 온갖 괴물과 싸우며, 아름다운 여인들과 사랑에 빠지며,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돌아오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표현된 언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페넬로페가 매일 밤 한올 한올 풀어내는 저 옷감 속에도 숨어 있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이 강인하고 매혹적인 여성의 이야기는 저 풀어헤쳐 널브러진 직물 속에 숨어 있다. 오죽하면 자신이 정성 들여 짜낸 옷을 밤마다 풀어서라도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권리를 지키고 싶었겠는가. 전쟁터에 나간 남편은 10년 넘게 돌아오지 않고, 페넬로페의 가슴속에서는 기다림에 대한 믿음조차 사라졌을 것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남편, 한 여자의 재산과 육체를 노리고 경쟁적으로 구혼을 하며 자기들끼리 난장판을 벌이며 집 안에 진을 치고 있는 낯선 남자들, 아버지를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아들 텔레마코스가 하루하루 커가며 아버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모습. 이 모든 것이 페넬로페에게 깊은 절망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페넬로페는 단지 남편만을 그리워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남편이 온갖 모험과 용기의 시험장으로 삼았던 바로 그 거칠고 너른 ‘세상’이야말로 페넬로페가 진정으로 그리워한 대상이 아닐까. 평생 집 안에 갇혀 있다시피 살아온 우리의 페넬로페, 배낭여행 따위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우리의 가여운 페넬로페. 그도 역시 모험이 그립고, 열정이 그립고, 무엇보다도 단 하루라도 내 맘대로 살아볼 수 있는 권리를 그리워했던 것이 아닐까.

이런 마음으로 <오디세이아>를 읽고 있으면, 마음속이 한없이 간지러운 느낌, 어딘가 붕 뜬 느낌, 갑자기 어디론가 정처 없이 길을 떠나야 할 것만 같은 찬란한 설렘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오디세이아>를 불만 가득한 눈길로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새로운 페넬로페 이야기를 내 손으로 쓰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한다. 답답하게 남편을 기다리기만 하는 페넬로페가 아니라, 언젠가 저 지긋지긋한 수의를 찢어발기고, 당당히 떨쳐 일어나 자기만의 새로운 오디세이를 찾아 떠나는 페넬로페를 꿈꾸게 된다.

이야기의 불꽃이 일어나는 지점

그리하여 그리움은 과거를 향한 것만이 아니다. 나는 미래를 그리워한다. 내가 아직은 결코 붙잡을 수 없는 미래, 그러나 언젠가는 기필코 닿을 수 있는 세계를 향한 그리움. 그것이 나의 고단한 일상을 밀어간다. 예컨대 어떤 책을 읽으면 잊고 살았던 친구의 얼굴이 미친 듯이 보고 싶어진다. 그런 책이 좋다. 간신히 억눌렀던 그리움을 끝내 폭발시켜 분출하게 만드는 책. 간신히 잊어버린 슬픔의 화약고를 마침내 폭파시켜버리는 책. 읽고 나면 누군가가 너무도 그리워 그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지금 당장 모든 일을 접고 기어이 그에게로 달려가게 만드는 책. 요새는 윤이형의 <붕대 감기>를 읽으며 그런 그리움을 느낀다. 그야말로 마치 붕대를 감듯 여러번 ‘돌려감기’ 하여 다시 읽으면서 그리운 존재들을,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그리워도 연락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인연이 끊긴 뒤에도, 이유도 정확히 모른 채 헤어지고 나서도, 여전히 그립고 보고 싶은 친구가 있는가. 바로 그 친구야말로 나의 결핍과 콤플렉스마저 보듬어줄 수 있는 진정한 솔메이트인지 모른다. <붕대 감기>는 온갖 서운하고 야속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친구를 향한 버릴 수 없는 우정의 참회록이다. 오해와 갈등과 질투로 얼룩진 과거마저도 우리가 더 크고 깊어진 우정으로 끌어안아야만 할 어엿한 나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수많은 차별과 혐오로 얼룩진 현대사회에서, 엄마이자 딸이자 누이이자 이웃인 여성들이 서로를 향한 질시와 의심을 벗어던지고, 뜨거운 연대감으로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아야만 하는 이유. 그것은 내 아픔을 자신의 아픔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친구, 내가 아프면 자신이 더 아파하며 눈물을 참지 못하는 친구야말로 우리의 상처를 뼛속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최고의 동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리운 친구의 얼굴이 미친 듯이 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힘으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보고 싶은 우리 자신의 뜨거운 열정의 마그마를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움의 불꽃을 틀어막은 채, ‘난 당신 따윈 절대 그립지 않아’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만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 따윈 마음속에 키우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지만, 매번 그리움의 해일이 밀려오면 또다시 고꾸라지고 만다. <붕대 감기>를 읽고 있으면, 나의 이 저주스러운 질병에 가까운 그리움조차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우리가 망가진 가슴을 부여안은 채 아직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상처가 전혀 낫지 않은 순간에도 여전히 꿋꿋하게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은, 그리운 사람들을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끝내 이어지지 못한 인연, 끝내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렇게 그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기억해야 할 존재가 된다. 필멸의 존재를 불멸의 존재로 만드는 이야기의 마법은 그렇게 탄생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물리적으로는 사라져야만 하는 우리를 끝내 이야기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인공으로 만드는 힘. 그것이 이야기의 힘, 소설의 힘, 문학의 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움 때문에 파괴될 수 있지만, 그리움을 멈추고는 살아갈 수 없다. 현실에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멈출 수 없는 그리움,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이라는 이야기의 불꽃이 탄생하는 지점이니까. 불멸의 주인공이란, 우리가 포기하지 못하는 그리움을 불살라, 우리가 끝내 내려놓지 못한 슬픔을 온몸으로 불태워 하나의 눈부신 이야기가 되는 사람들이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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