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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⑦당신의 생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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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황모과 작가]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 '모멘트 아케이드' <7회>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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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트 리얼'을 통해 '소울'에서 체험할 수 있는 옵션은 몇 가지 더 있었어요. 연인과 가상 결혼을 체험할 수도 있고 서버를 경유 해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거나 섹스를 대리 체험할 수도 있고 육아를 경험할 수도 있었지요. 저는 액션 리스트를 노려보다 그냥 시스템을 종료시켰습니다. 감은 눈꺼풀 안으로 고독한 적막이 찾아왔습니다.

아바타에게 도대체 뭘 기대한 건지! 울분의 화살은 다시 저 스스로를 향했어요.

이번엔 당신에 대한 의문이 일었습니다. 이런 뻔한 시뮬레이션, 괄목할 기술력 이외엔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는 가상공간 속에서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꽃피울 수 있었나요? 똑같은 백그라운드를 세팅했는데? 도중에 접속을 끊어버릴 정도로 내게는 불쾌함만 남겼던 그 순간, 당신은 힘찬 심장 박동과 함께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호흡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요?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꾸어 낼 내적 에너지, 내겐 손톱만큼도 남아 있지 않은 그 힘을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도 완벽한 형태로 품고 있나요? 이상하기만 합니다.

당신도 혹시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 모멘트 아케이드 암시장엔 살인자의 모멘트를 파는 블랙 모멘터들이 있어요. 아무도 숨기지 않는 포르노처럼 당당하게 전시되고 성황리에 매매되고 있지요. 거래 자체는 플랫폼 바깥 암시장에서 성사되긴 했지만 아주 고가에 팔리고 있었고 꽤 간단하게 얻을 수 있었지요. 가상 살인 경험을 거래하는 것이 오히려 실제 살인율을 낮춘다는 근거 약한 분석도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암거래는 줄어들 줄 몰랐죠. 실제 모멘트인데도 가상이라는 이름이 붙어 교묘했지만요. 모멘트가 진짜인 건지, 아님 '소울'에서 아바타를 가상으로 죽인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리모트 리얼'을 통해선 구분이 전혀 안 되니까요. 실제 살인율을 낮추었다는 분석도 얼마나 정확한지 저는 모르겠어요. 오히려 살인 예행연습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판매 호조에 힘입어 최근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범죄형 블랙 모멘트는 패턴이 다양해지고 있다지요.

고백하자면 딱 한 번 저도 그 기억을 대리 체험한 적이 있었어요. 머리 꼭대기까지 늪에 파묻힌 것처럼 숨 쉴 수조차 없는데 뭐든 어때? 내가 맛보고 있는 바닥보다 훨씬 완벽하게 파멸한 인간의 기억을 대리 체험하게 된다면 그나마 내 삶이 낫다고 여기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내 호기심을 정당화시켜주었죠. 그래서 몇 가지 패턴을 암시장 카탈로그에서 둘러보다 그나마 소프트하다는 살인 모멘트를 구매했어요.

알코올 중독자이면서 마약과 도박 중독자인 살인자의 기억이었어요. 피해자의 얼굴은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었고 판매 설명란엔 다행히도 피해자도 세상에서 제일 악질인 살인자였다는 설명이 곁들여 있어, 조금은 죄책감을 덜어주더군요.

영상은 짧았어요. 접속하자마자 쌍방 폭행이 시작되었어요. 통증과 유사한 대리 감각이 뇌로 흘러들어오자 나 역시 분노와 울분이 치밀어 올랐어요. 영상 초반에 한두 대 맞은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우세한 힘이 여러 가지 강도와 방식으로 뿌옇게 얼굴이 뭉개진 상대방 사내에게 가해졌어요. 그리고 나와 연결된 살인자가 테이블의 칼을 집어 들었습니다. 칼을 쥔 손을 높이 들자 나는 터질 듯 심장이 뛰었습니다. 그건 살인자의 심장이 아니라 내 심장 고동이었습니다. 다음 순간을 기대하는 흉악한 마음이었어요. 피해자의 심장을 향해 그의 섬뜩한 칼이 수직으로 내려꽂히려는 순간, 나는 허둥지둥 영상을 껐어요. 0.1초였을까요? 아주 찰나의 순간,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감각이 손끝으로 뭉텅 전해왔어요.

그건 정말 역겨운 경험이었어요. 내 삶이 그나마 낫다고 여기기는커녕 인간이 모두 벌레만도 못하다는 생각으로 치닫더군요. 누군가는 그 경험을 반대급부 삼아 살아갈 힘을 얻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그날 이후 암거래에는 더 이상 손을 뻗지 않았죠.

저는 당신에게 한 번 더 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 알려주세요. 그토록 뻔하고 무감흥한 시뮬레이션 속에서 어떻게 해야 당신처럼 삶을 살아낼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끼는 건가요? 저도 가능할까요?

황모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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