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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피렌체에서 찾은 질문: '에어비엔비화'을 어떻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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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도시를 위하여] 피렌체

서양 미술사 교과서에서 피렌체를 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비중으로 보면 이 도시는 그 어떤 도시보다 과연 압도적이다. 유럽이 기나긴 중세를 겪은 후, 그리스 로마 시대로부터 전해져온 문화 예술을 재발견한 르네상스의 시작이 피렌체였다는 건 누구다 다 아는 사실이다. 르네상스가 그곳을 시발점 삼아 유럽 전역으로 보급되었다는 것도.

그런 까닭에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 등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예술가 역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들은 대부분 시공을 뛰어넘어 여전히 스타다.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들의 유명한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인파가 피렌체로 향한다. 르네상스는 이미 역사의 저 너머로 흘러간 지 오래되었으나, 피렌체는 여전히 르네상스의 향기로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다. 동시에 고즈넉함과는 거리가 먼, 온통 수많은 여행자들로 붐비는 관광 도시임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1980년대 중반 무렵 이 도시를 처음 들렀을 때를 떠올리면 뜨거운 태양과 어수선함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 도시 자체의 감흥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오랜만에 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11월 말로 피렌체 여행의 일정을 잡은 건 그 때문이다. 그 무렵이라면 관광객 인파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크리스마스 전후만 피한다면 관광객을 피하기에 가장 좋은 시즌이 바로 겨울이다. 내가 처음 여행을 했던 1980년대에도 이미 관광객은 차고도 넘쳤지만, 특히 몇 년 전부터는 이 도시에 관광객이 너무 많아 여행이 즐겁기는커녕 인파에 치여 피곤하고 지치기 일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어디 피렌체만의 문제일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도시라면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과잉 관광객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도시로는 베네치아가 으뜸인데, 피렌체도, 파리도, 베를린도, 바르셀로나도 과잉 관광으로 문제가 심각한 도시 목록에서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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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 아르노강 풍경. ⓒ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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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는 왜 굳이 피렌체에 가고 싶었던 걸까. 유명한 관광지로서의 피렌체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르네상스 시대 도시 구성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거기에 더해 역사적인 경관을 잘 보존하고 있는 이 도시가 21세기에 당면한 과잉 관광 물결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눈으로 살펴보고 싶다는 것 역시 피렌체 행의 큰 이유였다.

한동안 나의 주거지였던 교토를 떠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뒤부터, 그곳을 되찾아 갈 때마다 과잉 관광객으로 인한 변화를 이미 눈으로 확인한 나로서 과연 피렌체는 어떨지 비교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러자면 하루이틀 머물러서는 내가 보고 싶은 걸 볼 수 없었다. 최대한 오래 이 도시에 머물며 구석구석을 살피고 싶었다. 그래야만 내가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역시 비용이었다. 아무리 저렴한 호텔을 찾는다고 해도 장기 체류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의 선택은 에어비엔비였다. 나의 선택지는 주로 개인용 원룸 또는 투룸이었다.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케아' 스타일이었다. 11월 말은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덜한 편이라 원하는 위치가 어디든 쉽게 고를 수 있었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이니 숙소는 피렌체의 원도심(centro storico) 가까운 곳에 밀집되어 있었다. 관광객들을 가급적 피하고 싶어서 유명 관광지에서 약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 곳으로 숙소를 정했다.

피렌체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에어비엔비가 있어 전 세계 어디든 여행하기에 참 편하다고 생각했다. 여행자뿐만 아니라 도시로서도 유용한 점이 많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웬걸. 막상 피렌체에 도착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거리 곳곳에 '젠트리피케이션 반대'라는 거친 구호와 나란히 써진 것이 바로 '에어비엔비 반대'라는 구호였다. 이유가 뭘까?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간단히 말하자면 여행자들이 너무 쉽게 그곳 주민의 일상 속으로 침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묵고 있는 에어비엔비 가까이의 슈퍼마켓이나 카페, 아이스크림 집은 관광객이 아닌 동네 주민이 주로 찾는 집들이었고, 그 공간에 불쑥 들어가는 나라는 존재는 그들 입장에서는 매우 이질적인 침투자일 수밖에 없었다. 한 번 그렇게 인식하기 시작하자 이후부터는 그런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만나는 주민에게 웃으면서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먼저 건네는 것밖에 없었지만, 그것으로라도 그들을 존중하려는 내 마음을 전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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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 주택가 풍경. ⓒ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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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차츰 에어비엔비 근처보다는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는 곳들을 찾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니 당연히 이탈리아어보다 매우 다양한 외국어가 공간 안에 가득했다. 영어 메뉴판과 안내판은 없는 곳이 거의 없었다. 이런 곳이라면 관광객이 잘 모르지 않을까 싶은 곳에도 관광객은 차고도 넘쳤다. 피렌체 안에 피렌체 시민은 보이지 않고, 관광객들만 더 많아 보일 지경이었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의 스테파노 피카씨아(Stefano Picascia)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미 2017년 피렌체 원도심의 주택 중 약 19퍼센트가 에어비엔비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전체 중 15퍼센트는 단독 형태로, 단기 임대용이다. 2015년과 비교했을 때 약 60퍼센트 이상 증가한 수치다. 피렌체 원도심은 워낙 작은 집들이 많은 데다 관광객의 수요가 많기 때문에 에어비엔비로 전환이 쉬운 집들이 많다. 게다가 원룸이나 투룸을 에어비앤비로 전환할 경우 일반 임대를 내줬을 때보다 고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집주인들 사이에서는 에어비엔비 사업이 인기가 많다.

그렇다면 주민들에게 좋을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좋기만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작은 집들을 관광객에게 내주기 시작하면 원래 임대해서 들어가 살던 주민 입장에서는 구할 집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급이 줄어들면 당연히 임대료는 상승하게 되어 있다. 상승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주민은 점점 원도심을 떠나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렇다 보니 한 해에 평균 1천여 명이 원도심을 떠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원도심에는 상주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관광객만 가득하다. 피렌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원도심의 인구 수가 갈수록 심각하게 줄어드는 베네치아 역시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점점 원도심 안의 주택들이 호텔로 전환되었다. 주택 공급이 줄어들자 원도심의 인구 역시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과잉 관광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한 지 오래된 세계 여러 도시는 등록제, 숙박 일수 제한, 세금 징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에어비엔비를 규제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파리와 바르셀로나는 에어비엔비 숫자를 규제하기 위해 등록제를 도입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는 다음과 같은 규제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1. 주민이 살고 있는 집이어야 할 것2. 방 하나만 내놓을 것3. 일 년에 에어비엔비로 예약을 받는 날짜의 수를 제한할 것

일본은 아예 시 단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에어비엔비 등록제를 도입했다. 피렌체의 대처는 조금 다르다. 강제적인 규제보다 세금을 징수하는 쪽을 택했다. 2016년부터 피렌체에서 에어비엔비 사업을 하려면 이용자 개인당 매일 4유로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 세금은 7일까지 적용하고 그 이상 숙박하면 추가 세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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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트리피케이션 반대 운동 사무실. ⓒ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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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피렌체 등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교토의 현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피렌체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교토 역시 2010년 후반부터 관광객이 폭발, 오늘날에는 과잉 관광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광객을 흡수하기 위해 호텔도 많이 지었고 등록된 에어비엔비도 이미 많다. 그런데 교토의 전체 주택 중 약 14퍼센트는 빈 집으로 남아 있다. 물론 이러한 빈 집의 일부를 수리해서 고급 숙박 시설이나 에어비엔비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토의 빈 집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로 그 숫자가 적지 않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우선은 작고 오래된 목조 주택을 일본의 젊은 세대가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 심각하다. 젊은 세대에게 일본의 전통 목조 주택은 그저 불편한 집일뿐이다. 새로 지은 아파트와 비교할 때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자연스럽게 빈 집 주변은 사람들의 왕래가 줄어들고, 그 지역에서 소비 역시 매우 둔화하기 마련이다. 교토의 이러한 특성으로 볼 때 오히려 다른 도시처럼 에어비엔비를 규제함으로써 빈 집의 재활용 의지를 꺾는다면 도시를 활성화하는 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오히려 빈 집을 활용한 에어비엔비를 적극 장려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시 피렌체로 눈길을 돌려보자. 피렌체의 원도심에도 교토처럼 작고 오래된 집들이 많다. 이런 집들은 세계 어디나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 아니다. 그러니 교토만큼은 아닐지라도 빈 집도 꽤 있었을 것이다. 피렌체 전체 인구 수가 약 38만 3천 명인데, 그 중 약 6만 3천 명 정도만 원도심에 거주하고 있다. 원도심보다 외곽으로 갈수록 주택의 선택지가 더 넓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에어비엔비의 눈에 보이는 증가세로 인해 원도심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하고는 있지만 이미 세대가 교체하면서 생활 방식이 달라졌으니, 그로 인해 어쩌면 에어비엔비가 아니어도 인구 수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에어비엔비가 없었더라면 피렌체는 물밀듯이 들어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이미 호텔을 더 많이 지었을 테고, 피렌체의 시민은 더 넓고 편한 집을 찾아 외곽으로 이사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피렌체의 에어비엔비에 머무는 내내 주변의 가게에 갈 때마다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가 꼭 그랬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피렌체는 유명한 도시고, 볼거리로 가득해 관광객이 많은 것이 기본이다. 주민보다 많은 관광객 숫자를 두고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테마 파크'로 변질되었다는 비아냥도 들리긴 하지만 그게 꼭 그렇게 부정적이기만 할까. 오래전 여행은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부자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여행이었으니 피렌체로 여행 오는 이들의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부자만 할 수 있던 것에서 이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여행의 개념이 바뀌었다. 예전에 비해 늘어난 여행자의 수를 두고 과잉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온당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에어비엔비에 묵는 것을 미안해 할 것이 아니라 피렌체의 골칫거리로 여겨지는 '과잉 관광'에서 '과잉'의 기준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과연 피렌체와 같은 도시에서 관광객의 '과잉'이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걸까? 또한 이러한 과잉을 규제하고 제한하는 대책을 마련한다면 누가 누구를 어떤 방법으로 제한할 것인가에 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질문을 달리 해보면 이렇게 된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예술적으로 자산이 풍부한 원도심에서 주민과 관광객이 서로 공존하고 배려하며 지내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르네상스의 테마 파크' 피렌체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적어도 그 질문의 답은 '늘어나는 에어비앤비에 대한 비판' 또는 모든 원망의 대상으로 에어비엔비를 지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관광객은 주민을, 주민은 관광객을 서로 존중하며 각자의 입장에 맞게 피렌체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보려는 노력으로부터 답을 찾는 여정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피렌체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답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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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이 많은 두오모 광장. ⓒ로버트 파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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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로버트 파우저 독립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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