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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누군가 내 이름을 훔쳐 '가짜뉴스'를 찍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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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조선일보

일러스트=김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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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이다. 일요일 오후에 한 교회 특강을 맡았다. 점심 식사를 꼭 대접하고 싶어 하는 교우가 있었다. 신도 10여 명이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나를 초대한 부부가 앞자리에 앉아 있다가 사연을 말했다. 남편 얘기다.

젊었을 때 아내 마음을 사로잡아야겠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어 내 책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선물로 주면서 "나도 장차 저자(著者) 인생을 꿈꾸고 있는데 사귀어 보자"고 유혹했다는 것이다. 뜻밖에도 그때 그 여대생도 내 책을 읽고 있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연애하게 되면서 결혼했다는 설명이었다. 그의 화법이 재미있어 모두 웃었다.

내가 그 부인에게 "결혼해 보니까 믿을 만했어요?" 물었다. "처음에는 교회에도 다닐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때뿐이더라. 하지만 지금은 나보다 더 깊은 신앙 생활을 해 만족하고 있다. 100점은 못 되어도"라고 해서 또 웃었다. 비슷한 사례를 자주 체험하기 때문에 감사했다.

이렇게 사랑과 배려가 있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키워가는 것이 내 소박한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 꿈이 사라지는 경우가 생긴다. 성숙하지 못한 정치인들이 그 방향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 일주간 겪은 일도 그 사례다.

어떤 사람이 자기 유튜브에 '국민에게 고함―김형석'이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어 있었다. 동명이인이겠지 하고 보았더니 100세가 넘은 철학 교수라고 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나에게도 전화가 몇 통 걸려 왔다. 실정을 알 만한 사람에게 부탁해 내용을 찾아 읽어 보았다. 물론 내가 썼거나 얘기한 게 전혀 아니다. 글을 올린 사람이 자기 글과 실명으로는 영향력이 작을 것 같으니까 내 이름을 도용했는가 싶었다. 걱정해 주는 사람들도 "교수님을 아는 사람은 모두 알겠지만 혹시라도 누가 될 것 같아 말씀드린다"는 얘기다. 한 신문기자는 "그런 가짜 뉴스들이 악용되는 경우가 있으니 기사로 쓰겠다"고까지 했다.

이 속에 깔려 있는 문제는 심각하다. 나는 중학교 때 서양사를 가르치던 김성식 선생에게 '로마는 영원하리라고 믿었는데 무엇이 그 종말을 만들었는가? 도덕성의 퇴락이었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어렸을 때는 인도 간디의 전기를 읽으면서 '진실은 세상 끝까지 남지만 거짓은 죄악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철들면서는 도산 안창호에게 '정직이 애국심'이라는 삶의 모범을 배웠다. 만일 도산의 뜻대로 '죽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말자'는 뜻을 다들 실천했다면 지금 우리 사회 현실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사회 여러 계층 지도자들이 '정직'의 모범을 보여주고 실천해야 한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최소한 거짓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독재국가와 공산 사회가 패망한 것은 외부의 침공이 아니다. 정직과 진실을 지도층부터 파기했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정치는 필요악'이라고까지 말한다. 진실을 외면하고 수단·방법으로 정의를 대신하려는 정신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정권과 국가는 비운을 초래하게 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反)윤리적 선택을 감행한다면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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