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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소주성 효과, 상상이라도 해봅시다" 성공수기 안 들어오자 시나리오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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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성 특위, 사례 응모 저조하자 영화 스토리 모집 다시 나섰지만 한달여간 지원作 단 한건도 없어

文지지자들도 "가짜뉴스 아니냐" "실제로 이런 공모를 하나" 비판

'어느 여학생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한다. 내레이션으로 이 여학생의 신세 한탄이 나온다. 판매 상품 이름을 외우느라 토익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등이다. 그러다가 여학생은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월 50만원을 준다는 내용의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 전단을 발견하고는 희망을 품게 된다.' 작년 말 '소득 주도 성장(소주성) 정책 체험 사례 공모전' 최우수상을 받은 2분짜리 영상은 이런 내용이다. 영상은 '감사합니다.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자막으로 끝난다.

이 영상에 상을 준 공모전은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회가 작년 9~10월 열었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으로 혜택을 본 사람이 자신의 사례를 영상, 웹툰, 포스터, 카드뉴스, 수기 등으로 만들어 내라는 것이었다. "제출하기만 하면 선착순 100팀에 커피 기프티콘을 준다"고 홍보도 했다. 하지만 특위는 준비한 커피 쿠폰을 다 쓰지도 못했다. 한 달간의 접수 기간 들어온 작품은 70여 개에 그쳤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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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위는 들어온 작품을 두고 고심 끝에 10편의 당선작을 뽑았다. 이 중 단 두 작품만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후 3개월간 유튜브에서 최우수상 수상작 조회 수는 기자를 포함해 총 24회. 특위가 차마 공개하지 못한 당선작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실제 정책 사례라기보단 단순 정책 홍보물에 불과했다. 당선작 제목부터가 '한 줄기 빛, 문재인 케어', '청년 취업의 희망, 청년센터' '청년 구직활동 지원사업, 청년의 미래이자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등이었다. 특위 관계자는 "작위적인 내용이 많아 라디오에 보내는 사연 수준이었다"고 했다.

실제 사례가 모이지 않자 특위는 전략을 바꿨다. 지난달부터 소주성에 기반한 드라마·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 착수했다. 특위 관계자는 "실제 사례가 부족하면 머릿속으로라도 상상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주제도 직접 정해줬다. ▲문재인 케어 ▲최저임금 인상 ▲근로장려금 등이다. 이 같은 정책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 '허구'의 스토리를 시나리오로 제출하면 된다. 특위 관계자는 "예컨대 사회 불평등으로 좌절만 하던 국민이 국가 지원 정책으로 자립하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이야기를 모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3등 당선작에 대해서는 100만~500만원의 상금을 걸었다. 상금과 홍보비로 정부 예산 약 3000만원이 쓰인다. 그러나 접수를 한 지 한 달이 지난 20일 기준, 지원 작품은 단 한 건도 없다.

이 같은 공모전 소식을 접한 국민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난 19일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5층짜리 건물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 시나리오 공모전' 포스터가 18장 붙어 있었다.<사진> 이 학교에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학생이 많다. 이날 이곳을 지나던 학생 김모(22)씨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정부 선전 영화를 만들라는 것은 모욕적"이라며 "대다수 학생이 영화 제작을 통한 사회 참여를 희망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방식이 정부 선전 영화 제작은 아니다"라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외면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많이 모인 커뮤니티 '82cook'에서조차 공모전 포스터를 본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공모전을 하느냐' '가짜 뉴스 아니냐' 등 댓글을 달았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표되는 소주성 정책으로 경제에 역효과를 불러놓고 한가하게 자화자찬 공모전이나 하자는 거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왔다.

특위 관계자는 "대국민 소통 차원에서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지 국민에게 정책을 세뇌하려는 목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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