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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백영옥의 말과 글] [137] 기생충과 스카이 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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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6월에 나올 신작 때문에 집 밖에 거의 나가지 못하고 있다. 십수 년 글로 밥벌이를 하지만 어째서 창작 노하우는 늘지 않은 것인지, 이렇게 저렇게 고쳐도 ‘망할 게 틀림없다’는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창작을 하는 두 친구와 넋두리를 하다가 한 친구가 몇 년 전 매일 작업하는 동네 카페에서 어떤 사람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다는 얘길 꺼냈다.

"엄청난 거구의 한 남자가 카페에 들어오더라고. 노트북을 펴놨는데 그날은 원고 읽을 마음도 안 들고 해서 맞은편 그 남자를 관찰했거든. 와! 어찌나 머리를 쥐어뜯고 전화통 붙들고 심각하던지." 대화 도중 갑자기 그는 이상할 정도로 해맑은 표정으로 웃다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 거구가 봉 감독이었어!"

그는 천하의 봉준호 감독도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 패듯 괴로워하는 걸 보니, 자신의 괴로움은 참을 만한 것이 되더라는 복음 같은 말을 전파했다. 법정 드라마 대본을 쓰던 친구와 연재 중인 소설로 괴로워하던 나는 그의 말에 물개 박수를 하며 "아! 나만 바보같이 괴로운 게 아니었어! 봉준호도 그렇대!" 할렐루야를 외쳤다.

우리는 살면서 언제 위로받을까. 누군가의 따뜻한 격려에 위로받을까. 역경을 극복한 사람의 성공담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을까. 우리는 성공담이 아니라 누군가의 '실패담'을 들을 때 가장 격렬히 위로받는다. 사람은 참으로 연약하고 한심해서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너도 힘들고 같이 힘들다는 걸 알 때 더 큰 위로로 연대하는 것이다.

요즘 쥐어뜯는 머리가 한 움큼인 나는 드라마 감독인 친구 말을 자주 떠올린다.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역사를 새로 쓴 봉 감독이 무대에서 멋진 말을 할 때마다 그 카페를 떠올린다. 친구 역시 봉준호 감독과 같은 곳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재능 없음을 한탄하다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완성하지 않았던가. ‘기생충’과 ‘스카이 캐슬’. 이 문제적 걸작 탄생의 비화가 있는 곳이 방배동 모 카페라니, 소문이 나기 전에 가봐야겠다.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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