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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터치! 코리아] 가격은 두더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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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급 법칙, 부정하는 정부… 부동산 대책도 무식의 소치

가격 통제, 끓는냄비에 돌 얹는격… 시장경제 안 믿는다고 고백하라

조선일보

김신영 경제부 차장


킹크랩 가격이 이달 초 폭락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중국에 갔어야 할 게가 한국에 대거 풀려서란 소문이 돌았다. 이 뉴스를 저녁 먹으며 방송으로 접했다. 식당 손님들 반응이 비슷했다. "오… 킹크랩 먹으러 가야겠네." 진짜 실행에 나선 이가 많았던 모양이다. 킹크랩 먹겠다고 시장에 사람이 몰렸다고 한다. 킹크랩 가격은 한 주도 지나지 않아 이전 수준과 비슷하게 다시 올랐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이 교과서적으로 작동한 결과다. 수요·공급이 변해 가격이 움직였다.

요즘 대통령을 위시한 당국자들이 시장을 참 많이 찾아간다. 경제를 챙긴다는 '인증샷' 명소인 모양이다. 하지만 시장은 기념사진 찍으라고 있는 곳이 아니다. 수많은 경제주체가 저마다 이기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상호작용하며 경제를 일궈가는 놀라운 공간이다. 이런 자유 시장은 근대 이후 풍요의 대부분을 만들어냈다. 애덤 스미스 추종자임을 자처했던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생전 한 강연에서 자유 시장 경제를 이렇게 찬양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지만 자유 시장이야말로 정말 근사한 공짜 점심 아닌가."

경제학자들은 한국 번영사(史)를 흠모한다. 자유 시장 경제가 승리한다는 징표처럼 여긴다. 경제학책에 한국은 참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우리 정부가 자유 시장 경제를 잘 모르거나 심지어 싫어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엊그제 벌써 19번째 내놓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보면 특히 그렇다. 주택은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다. 좋은 집에 살려는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그런 집이 부족하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은행 팔 비틀어 대출을 억제하는 대책을 수백 번 내놓는들 공급을 늘리지 않으면 가격은 상승한다. 혹시 정부가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몰라서가 아니라, 자유 시장 경제를 부정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면 더 겁이 난다. 경제학자들은 종종 논쟁을 벌이지만 이 한 가지만큼은 대략 동의한다. 가격 통제는 시장을 망친다. 프리드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물이 끓어 뚜껑이 들썩이는 냄비가 있다. 가격 통제는 불 줄일 생각은 않고 위에다 벽돌을 얹어놓는 격이다. 냄비는 폭발하게 되어 있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분양가 상한제는 고전적인 가격 통제인데 부작용은 뻔하다. 시세보다 싸게 내놓으라는데 물건을 만들어 팔 장사꾼은 없다. 정부의 거침없는 가격 통제는 부동산에만 머물지 않는다.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 확대)로 반사이익을 본다며 실손보험료를 억지로 내리고, '노동의 가격'인 임금은 무리하게 올리고, 신용카드 수수료는 과도하게 깎았다. 전부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자영업자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자 임대료 강제 인하 방안까지 만지작거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이러스 피해를 임대료 인하로 줄이겠다는 발상이 황당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이 얼마 전 낸 책 제목은 '좀비와 논쟁하기'이다. 그는 '반증(反證)에 의해 진작 죽었어야 함에도 계속 살아남아 뇌를 갉아먹는 신념'을 좀비라고 했다. 안 먹히는 부동산 대책을 재탕하는 정부의 18전 19기를 보면 좀비가 떠오른다. 대통령은 말한다. "부동산 가격을 반드시 잡겠다." 가격이 두더지도 아니고 뭘 자꾸 잡겠다는지 모르겠다. 엄했던 한 선배가 습관처럼 던지던 말이 생각난다. "무식하면 물어봐!" 무식하다니 감히 무슨 소리냐고? 그럼 고백이라도 했으면 한다. 자유 시장 경제의 힘을 믿지 않는다고.

[김신영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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