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한일전' vs '한중전'⋯ 4월 총선 앞두고 다시 불붙는 프레임 전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4월 총선은 한·일전이다." "아니다, 한·중전이다."

4·15 총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본과 중국 이슈가 정치권에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권과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총선을 앞두고 다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맞서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보수 야당과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진원지인 중국에 우호적인 현 정권을 총선에서 심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일본을 향해 수출규제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與서 다시 부상하는 지소미아 종료론

여권에서는 최근 들어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 강화에 이렇다 할 변화가 없자 다시 일본에 대한 맞대응 카드를 거론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작년 11월 우리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유예하고,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협의에 나서기로 하면서 봉합되는 듯 했던 양국 갈등이 3개월간의 협의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자 다시 일본에 대한 공세적 태도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지소미아 종료 가능성을 다시 거론하고 나온 것이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략물자 수출통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대외무역법 개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했으니 일본도 수출 규제를 풀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최 의원은 그러면서 "일본이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쉼표를 찍었던 지소미아 문제는 다시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할만큼 한 대한민국 인내심도 그 끝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이 전향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한국 정부도 다시 지소미아 종료를 꺼내들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최 의원은 작년 한·일 수출 규제 갈등 당시 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반발해 "의병(義兵)을 일으켜야 할 일"이라고 주장한 대일 강경파다. 올해 열리는 도쿄 올림픽 보이콧 검토도 주장했다. 그런 그가 다시 기자회견까지 열어 지소미아 문제를 다시 꺼낸 것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서 다시 지소미아 종료 카드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일 내신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 종료 유예는) 종료 결정의 효과를 잠정 정지시켜 놓은 것으로 우리는 언제든지 종료 효과를 재가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더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소재·부품·장비에서 확실한 탈일본을 실현하겠다"고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 경제부처 활동 중 가장 뜻 깊었던 일로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을 꼽았다.

여권에서 대일 강경 기조가 다시 부상할 조짐을 보이는 것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뚜렷한 변화가 없는 게 일차적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 우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야당과 야권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현 정권의 중국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를 강하게 비판한 데 대한 맞대응 성격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난 4일 당 회의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가짜뉴스와 혐오조장 뉴스를 차단해야 한다"며 정부가 마스크 300만개를 중국에 지원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예로 들면서 일본 원전 오염수 문제도 언급했다.

조선일보

대구시 북구 매천동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지난 20일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野 지지층서는 "우한 코로나 퍼지는데도 中에 우호적인 文대통령 심판하자"

미래통합당 등 보수 진영에서는 "여권이 일본의 무역 보복 문제를 감정적인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몰아 총선용 이슈로 쓰려는 것"이라고 해왔다. 다만 "감정적 대응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수준에 머물던 보수 진영에서 최근 들어 여권의 4월 총선 '한일전' 프레임에 맞서 "이번 총선은 한중전"이라는 프레임을 제기하고 있다. 현 정권이 일본에는 감정적으로 발끈하면서 우한 코로나 사태에서 중국인 입국을 계속 열어두는 등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문제 삼아 친중·반중 프레임을 걸고 나온 것이다.

실제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총선은 한일전이 아니라 한중전"이라며 중국에 우호적인 현 여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주장이 올라오고 있다. 통합당이 우한 코로나 발생 초기부터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감염원 유입 차단이란 과학적 이유 외에 이런 지지층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한국인 첫 확진자가 나온지 사흘 뒤인 지난달 27일 "정부가 지금이라도 중국 여행객의 한국 입국을 금지하는 것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 측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도 통합당은 맹공을 가하고 나왔다. 이창수 통합당 대변인은 22일 논평에서 "전문가들은 물론이거니와 국민들이 줄기차게 얘기해온 '중국인 입국 금지 확대'는 (정부에서) 금기어처럼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비판했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정부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확진자가 나와야 중국인 입국금지를 할 것인가"라며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말한 문 대통령은 과연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보수 성향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문 대통령이 중국과 우정 테스트를 하는 동안 중국에서 들어오는 바이러스로 국민들이 병들어간다"거나 "4월 총선에서 친중 정권을 심판하자"는 주장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19일 국회에서 우한 폐렴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종족주의·혐오' 논란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과 지지층간에 '한일전' '한중전' 프레임이 맞부딪히면서 '종족주의' '혐오' 논란도 일고 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최근 중국인 입국 금지 주장에 대해 "질병 확산을 근거로 인종주의적 혐오를 조장하고, 정부를 공격하는 정쟁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그는 의사협회가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를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의학적 판단을 떠난 정치적 판단"이라고 했다. 반면, 통합당에서는 "총선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종족주의적 반일(反日) 이슈를 의도적으로 꺼낸 건 현 여권"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통합당의 한 의원은 "최근 일부 친여 성향 인사가 통합당 지지 기반인 대구시에서 우한 코로나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한 것과 관련해, 대구시 대응 조치를 겨냥해 일본과 비교한 것이 오히려 혐오 조장"이라고 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나 중국발 우한 코로나를 두고 여야가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 반일·반중 감정을 자극하거나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선거에 민족주의가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국민들의 일본·중국 비판은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과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결국 국제 문제의 국내 정치화"라며 "노골적으로 반일 또는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것은 국제 관계에서 오히려 부정적 효과를 낸다"고 했다. 이어 "작년에 조국 전 장관이 '죽창을 들자'고 하더니 역풍만 맞았다"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외교·안보 문제를 의도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선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덕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