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 후 오염된 주사침에 찔리면
피부·혈관 통해 바이러스 퍼져
자동으로 침 처리하는 제품 선봬
병원은 바이러스나 병원균·박테리아 등에 노출되기 쉬운 장소다. 요즘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확산할 때는 더욱 그렇다. 여러 명이 뒤섞여 진료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나도 모르게 감염될 수 있다. 하지만 마스크로 기침·재채기를 할 때 튀어나오는 타액만 막는다고 병원 내 감염을 완벽하게 차단하지는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주사를 통한 감염이다. 2015~2016년 국내에서 집단 발병한 C형간염 사건은 오염된 주사기를 통해 퍼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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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는 가느다란 침을 몸에 찔러넣어 직접 약을 투약하는 치료법이다. 같은 주사라도 어느 부위에 맞느냐에 따라 피부·근육·혈관으로 구분한다. 주사 과정 자체는 매우 간단하다. 팔뚝·엉덩이 등 주사 맞을 부위의 피부를 알코올 솜으로 소독한 다음 준비한 주사침을 꽂는다. 먹는 약과 비교해 투약이 까다롭지만 체내 흡수가 빨라 신속한 치료가 가능하다.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안연순 교수는 “주사는 특성상 인체 침습적이어서 주사를 환자에게 찌르기 전에 멸균·소독 과정을 거치고 한 번 쓴 주사기와 주사침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사기 폐기 때 침에 잘 찔려
문제는 얇고 날카로운 주사침을 분리할 때다. 보호 캡을 씌워서 폐기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이 주사침에 찔리는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손가락으로 주사침을 만지다가 혹은 주사기를 들고 있는데 옆에서 밀치는 등 예기치 못한 움직임에 찔린다. 응급 상황에서 급하게 서두르다가 다치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의료인의 주사침 찔림 사고가 세계적으로 연간 200만 건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단순한 피부 손상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혈액·체액에 오염된 주사침이 자신의 피부·혈관을 관통하면서 B형·C형 간염, HIV(에이즈 바이러스) 등 혈액을 통해 퍼지는 감염성 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 바로 경피적 손상이다. 개인 항체 보유 여부에 따라 B형간염은 10~60%, C형간염은 1~3%, HIV는 1% 미만이 실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4개 의료기관 종사자 38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1%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의료기관에서 최근 3년간 경피적 손상으로 인한 혈액성 감염병이 발생했다고 응답했다.
주사침은 혈액 속에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강력한 도구다. 주사침에 찔리면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는 거의 없다. 하지만 가늘고 얇은 주사침은 체내 깊숙이 들어갔다 나온 상태다. 똑같이 혈액에 노출됐어도 피부 표면이 베이거나 눈·얼굴·입으로 튀었을 때보다 감염 위험성이 더 크다.
주사침에 찔리는 사고는 무엇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안 교수는 “오염된 주사침에 찔린 다음 이뤄지는 예방적 처치도 필요하지만 사고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한국도 주사침에 찔리는 사고 발생 위험을 낮춘 안전 주사기 사용이 늘고 있다. 안전 주사기는 공학적으로 손으로 주사침을 만지지 않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주사를 완료하면 자동으로 주사침이 주사기 몸통으로 들어가는 식이다. 이후 주사기 밀대가 주사침을 꺾는다.
안전 주사기는 한국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개선하는 데 유리하다.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기관 종사자가 혈액성 감염 질환에 노출되는 경로를 분석했더니 주사침에 찔리는 경우가 88%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다음이 큐렛·와이어 등 뾰족하고 날카로운 수술용 도구 끝에 찔리는 경우(5%), 의료용 칼에 베이는 경우(3%), 혈액이 튄 경우(3%), 기타(1%) 순이었다. 주사침에 찔리지 않도록 안전 조치만 취해도 병원 내 감염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확인한 연구도 있다. 미국 한 대학병원에서 주사침 찔림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주사기, 안전 나비침 등 다양한 안전 설계가 이뤄진 의료기기를 사용하도록 했더니 날카로운 도구에 찔리면서 생기는 경피적 손상이 83.5%나 줄었다.
주사기 재사용 차단 효과도
장점은 또 있다. 재사용 차단이다. 주사기는 바늘은 물론 주사기 몸통도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주사침만 바꿔 사용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렇게 같은 주사기를 여러 번 사용하면 주삿바늘과 바늘을 꽂는 접합 부위가 오염돼 치명적인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 안전 주사기는 한 번 쓰면 주사기 재사용이 불가능하도록 고안돼 있다. 이를 통해 주사를 재사용해 발생하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 WHO도 안전 주사기가 의료인의 손으로부터 주사침을 격리하고, 재사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사용이 단순하고 간편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안전 주사기 사용 의무화를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안전 주사기의 활용도가 낮은 편이다. 이유는 비용이다. 안전 주사기는 개당 500원으로 일반 주사기보다 10배가량 비싸다. 건강보험 적용(2018년)도 뒤늦게 이뤄졌다. 이 마저도 ▶혈액 매개 감염병 환자 및 의심 환자 ▶응급실 내원 환자 ▶중환자실 입원 환자에게만 세부 규정에서 허용된 개수에 한해 제한적으로 인정한다. 사실상 규모가 있는 의료기관에서만 쓸 수 있다. 감염 관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동네 병원에서는 안전 주사기를 사용할 여건이 안 된다. 논란이 됐던 주사기 재사용 사건은 1차 의료기관에서 발생했다. 안 교수는 “안전 주사기를 사용하면 의료인은 물론 환자의 안전까지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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