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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매경시평] 코로나와 전쟁 승리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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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코로나19 환자 역학조사 결과를 매일 발표하는 질병관리본부장을 보며 국민은 그의 전문성을 신뢰했고 격무 때문에 초췌해진 모습을 안쓰럽게 생각했다. 확진 환자의 증가세가 주춤해진 지난주 이 사태의 조기 종식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감염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국민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현행 감염병예방법 시행령은 환자 설문과 면접, 신용카드 사용 내역, CCTV 영상 등에 의한 '매뉴얼' 역학조사 방법을 정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발표를 보면 이 시행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런 수동 방식이 매일 증가하는 환자 수가 한 자리일 때까지는 작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수동 데이터 획득 및 분석 체계는 강한 전염성을 가진 감염병이 돌발적으로 확산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부 공식 홈페이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진환자 이동경로 정보는 2월 23일 오전 10시 기준 556명의 확진 환자 중 2월 20일 확진을 받은 82번 환자까지 공개돼 있다. 그나마 반 이상은 감염 경로 정보가 없다. 이 중 이동경로가 있는 환자도 소수다. 시간에 따라 촘촘히 기술된 이동경로는 매우 드물다. 정보가 없기 때문에 국민은 더 불안하다. 현 사태에 대한 모든 정보의 생산과 공유의 중심이 되어야할 정부 공식 홈페이지가 이렇게 된 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소이다.

필자는 전염병 역학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전쟁이든 정보의 생산과 공유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승리할 수 있다. 급격히 늘어난 환자 규모에 대응해 신속하게 실시간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범국가적 체계가 시급하다.

특히 지역 사회 감염이 발생한 현시점에서 국민 각자가 자율적으로 감염 위험에 대처할 수 있게 감염자의 시공간적 이동경로와 접촉자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개해야 한다. 감염병예방법 제6조와 34조는 국민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신속하게'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감염 환자 이동경로는 이동통신사 등에서 자동으로 확보 가능하다. 법적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은 필요한 경우 감염병 환자 및 감염이 우려되는 사람의 위치정보를 경찰관서를 통해 통신사 등에서 수집할 수 있다. 통신사는 환자가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통화를 할 때 인접한 통신 기지국 정보를 기록한다. 도심의 기지국 간 거리가 수백 m이기 때문에 위치정보의 오차는 있지만 기존의 신용카드 기록, CCTV 영상 정보와 결합하면 시공간적으로 더 촘촘한 이동경로의 기계적 확보가 가능하다.

확진 환자의 이동경로 데이터베이스가 있으면 개인은 휴대폰 GPS 옵션으로 이동경로를 수집해 확진 환자 경로에 대한 시공간적 중첩 여부를 자가 판단해 코로나19 위험노출 정도를 추정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들은 자율적으로 위험지역 방문 자제를 안내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지오 펜싱(Geo-Fencing) 기능이다. 이런 GPS 정보는 자가격리 중인 의심환자가 확진으로 바뀔 때 정교한 이동경로 정보의 확보를 가능하게 한다. 이런 기능은 경찰의 112 위치 추적 서비스에 구현돼 있다.

사회는 무한한 연결성을 가진 네트워크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이 네트워크에서 시공간을 공유하며 이동한다. 심각한 증상을 겪는 환자들이 우선적으로 정부의 질병관리 시스템에 포착된다. 역학조사는 본류 네트워크를 오염시킬 수 있는 잠재적 감염자들을 미리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진단과 역학조사는 확률의 게임이다. 격리되지 않은 잠재적 감염자들이 네트워크를 오염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물론 국민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실시간으로 투명한 정보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체계를 범국가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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