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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의료 한계상황 닥쳐서야 '심각' 인정… 이미 음압병상 다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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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코로나 확산]

文대통령 "머지않아 종식될 것" 발언 10일만에 위기 경보 올려

질본·의료계의 조언 무시하다가, 감염 폭증하자 부랴부랴 조치

국가지정 음압병상 전국 198개뿐… 대구·부산 등 가동률 100%

정부가 23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하자 감염병 전문가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뒤늦게라도 위기 경보 격상을 수용했지만 그간 번번이 반 박자 늦게 대처한 탓에 수습해야 할 혼선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위기 경보를 격상한 것도 결국 여론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청와대가 질병관리본부와 전문가 조언을 줄곧 무시하다가 주말 새 확진자가 390명 이상 급증하면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자 부랴부랴 경보를 격상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위기 경보를 격상한다"고 했지만, 정작 방역 당국은 전날만 해도 경보 격상에 시큰둥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전국에 좀 더 많은 환자가 발생했지만, 대구·경북을 제외하고는 아직은 산발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정부의 늦은 대처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확진자 폭증의 직접 원인인 '집단 행사(대규모 행사)'를 일찍 막지 않은 게 패착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확진자가 나오지 않던 지난 12~15일 김 차관은 두 번이나 "집단 행사를 연기하거나 취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13일 "우한 코로나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며 "경제 회복의 흐름을 되살려야 할 때"라고 했다. 방역 당국은 첫 사망자가 나온 21일에야 집단 행사 자제 권고를 내놨다.

현 정부서 음압 병상 겨우 4개 늘어

확진자 급증으로 음압 병상이 부족해질 가능성도 커졌다. 음압 병상은 기압 차이를 둬 공기 중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시설이다. 현재 전국에 음압 병상은 총 1027개다. 이 중 국가지정 음압 병상은 198개로 19%에 불과하다. 정부는 38명이 사망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음압 병상)을 확충하겠다고 했지만 2017년 2월 당시(194곳)보다 4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제때 음압 병상을 확충하지 않아 현재 대구와 경북은 물론 부산, 충북, 강원의 국가지정 음압 병상의 가동률이 이미 100%다.

조선일보

문재인(가운데) 대통령이 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 19 범정부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국무총리, 문 대통령,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날 정부가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서 학교 휴교·휴업 등이 가능해지고 항공·철도 등 대중교통 운행 제한, 감염병 대응을 위한 예비비 편성 등이 가능하게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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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추진한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도 공염불에 그쳤다. 의료계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설립은커녕 겨우 두 곳만 지정했을 뿐 실질적 진척이 없었다"고 말했다.

진단 검사 건수도 정부가 공언한 만큼 늘지 않았다. 지역사회 감염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하루 진단 검사 건수가 늘어야 조기 진단과 치료가 더 쉬워져 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질본 관계자는 지난 12일 "현재 하루 5000건의 검사가 가능하고, 다음 주 중으로 하루 1만건까지 검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최근 이틀간 검사 건수는 각각 4957건, 4424건이었다. 23일 현재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대기 건수는 8000여건에 달한다.

자가 격리자 늘면서 '이탈' 우려 커져

자가(自家) 격리자 관리에도 구멍이 뚫리는 양상이다. 부산에서는 확진자로 판명된 19세 남성 A씨가 '자택 격리하라'는 지침을 받았지만, 이를 어기고 대형 마트에 들르고 가족과 외식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전 첫 확진자인 20대 여성 B씨(241번 확진자)는 20일 자가 격리를 안내받고도 21일 확진 전까지 대전지방우편취급국과 자양동 생활용품점을 방문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천지 대구교회 신도 9334명이 증상 유무와 무관하게 자가 격리 통보를 받으면서 전국에 자가 격리자가 약 1만여 명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무원이 일대일로 전담 관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자가 격리자 행동수칙 위반 시 벌금은 최대 3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홍콩에서는 자가 격리를 위반하면 벌금 400만원 이하 또는 징역 6개월에 처할 수 있다. 대만은 최대 4000만원 벌금형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15번 확진자가 담당 보건소에서 자가 격리 통지서와 행동수칙 안내문 발송을 받지 못해 제대로 수칙을 지키지 않아, 결국 처제(20번)와 처제의 딸(32번)까지 감염시켜 논란이 된 바 있다. 일각에선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자가 격리 조치를 더 꼼꼼히 하고 위반 처벌을 강화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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