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영아들은 어떻게 ‘코로나19’의 융단폭격을 피해가고 있을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국 확진자 3만명 육박할 때 생후 1년 이하 영아 확진은 9명뿐

‘선천 면역’ 더 활발 추측…성인병·비만 등 건강 저해요인도 적어

감염 때는 ‘가벼운 증상’…과학계 “아이들 안전, 단정은 어려워”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센(문화센터) 신청했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갑자기 늘어서요…. 다녀도 될까 너무 고민이네요. 아기 있는 분들 외출 어떻게 하시는지요?”

육아 정보를 나누는 한 인터넷 카페에 최근 올라온 글은 코로나19 확산을 바라보는 엄마들의 심정을 보여준다. 비교적 좁은 실내 공간에 여러 명이 모여 1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문화센터 놀이 수업의 특성상 선뜻 참여하기가 꺼려진다는 얘기다. 스튜디오에서 찍으려고 했던 생후 200일 맞이 사진촬영을 취소했다거나 집안 어른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 아기를 데리고 나가는 게 부담스럽다는 글도 인터넷에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던 국내 확진자가 지역사회 감염 확산으로 지난주부터 급증세로 돌아서면서 엄마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아기들은 코로나19에 취약할까.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할 만한 연구가 나왔다. 우한대병원 소속 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중국 의학자들은 이달 중순 발표된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지난해 12월8일부터 이달 6일까지 중국에서 코로나19 감염 판정을 받은 생후 1년 이하의 영아 9명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9명’이라는 숫자다. 연구진은 두 달 가까운 기간에 중국에서 확인된 모든 신생아 감염자를 추렸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숫자가 한 자리에 머물렀다. 지난 6일을 기준으로 중국에선 2만8018명의 감염자가 발생했고, 563명이 사망한 상황이었다. 생후 1년 이하 영아의 감염은 지극히 드문 일이었다는 얘기다. 9명의 영아 가운데 가장 어린 아기는 생후 1개월이었고 ‘최연장자’는 11개월이었다.

게다가 연구진이 내놓은 결과를 보면 9명 영아 가운데 누구도 중증을 앓지 않았다. 대부분 발열이나 가벼운 호흡기 증상을 겪었고 아예 증상 없이 양성 판정만 받은 경우도 있었다. 논문은 “영아 9명 가운데 누구도 집중 치료가 필요하지 않았다”며 “심각한 합병증이 나타난 경우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아기들의 가족 가운데에는 적어도 한 명 이상의 감염자가 있었다. 연구진은 성인보다 영아들이 바이러스에 비교적 덜 취약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코로나19에 저항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은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이달 초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를 연구하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레이나 매킨타이어 박사는 “어린이에게는 자각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정도의 감염증만 유발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말릭 피리스 홍콩대 바이러스학과장도 “아이들은 감염된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영아들은 코로나19의 융단 폭격을 어떻게 피하는 걸까. 과학계는 아직 원인을 규명 중이지만 몇 가지 가능성을 짚어보고 있다. 미국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에 따르면 앤드루 파비아 유타대병원 소아전염병과장은 “어른과 아이의 면역 반응 체계가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가지 가설은 ‘선천 면역’이 아이들의 경우 더 활발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천 면역은 우리 몸을 지키는 1차 방어체계다. 바이러스 같은 외부의 위협에 가장 먼저 뛰어나가 맞선다. 하지만 선천 면역은 피아가 정확히 구분되는 적을 잡아내는 데 특화돼 있어 틈이 생길 수 있다. 전장에서 비슷한 군복을 입은 부대가 뒤섞이면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이기 곤란한 것과 비슷하다. 선천 면역에서 막지 못한 외부의 위협에 맞서는 게 2차 방어부대인 ‘적응 면역’이다. 적의 특수부대처럼 아군과 비슷한 군복을 입었더라도 이를 정확히 간파해 공격하는 임무를 띤다. 적응 면역은 선천 면역 과정에서 얻은 적의 정보를 통해 효율적인 방어 전략을 짠다.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우리 몸에서 선천 면역이 작동하는 구조가 결과적으로 아기 등 10세 이전 어린이가 가벼운 코로나19 증상을 겪는 현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두나 홍역 같은 질병 역시 어린이는 어른보다 가벼운 증상만을 보이고 지나가는 일이 많은 점도 선천 면역과 관련된 것으로 과학계는 보고 있다.

아이들이 담배나 대기 오염에 덜 노출된 호흡기를 가진 게 요인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당뇨병이나 심혈관 질환 같은 지병이나 비만 같은 건강 저해 요인이 성인보다 적다는 점도 코로나의 재앙에서 비켜 서 있는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의료계는 고령과 지병을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건강 상태를 악화시키는 주된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유비무환’을 강조한다. 분석을 할 만한 표본이나 연구를 위한 자료가 너무 적기 때문에 “아이들은 안전하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영아를 키우는 어른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신체 접촉 전에는 꼭 손을 씻으라고 중국 연구진은 강조했다. 또 정기적으로 장난감과 식기는 살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지금 많이 보는 기사

▶ 댓글 많은 기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