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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돈도 안 생기는 감자, 왜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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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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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제표 읽어주는 남자-5] 주식을 하다보면 감자 먹었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합니다. 이 말은 주가가 반 토막이 나거나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이 종잇장이 됐을 때 사용되는데요. 여기서 '감자' 란 자본의 총액을 줄이는 일로, 쉽게 말해 주식을 찢어 버리는 것입니다. 10분의 1을 감자하면 주주가 가진 주식 10주를 받아와서 9주는 찢어버리고 1주만 돌려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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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한다고 회사에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이익이 생겨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주식 수만 줄어들 뿐이죠. 그렇다면 왜 주주의 피눈물을 짜내는 감자를 하는 것일까요?

감자는 자본잠식을 벗어나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본잠식이 계속되면 관리종목에 편입되는 것은 물론, 상장폐지의 위험도 있죠. 여기서 '자본잠식'이란, '잉여금을 모두 소진하고 원금도 손실된, 혹은 손실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감자를 하면 자본은 줄어들지 않고 자본금만 줄어드는데요. 얼핏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자본금이 줄어들면 자본도 당연히 줄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재무상태표에 나와 있는 '자본'은 실체가 없는 숫자일 뿐입니다. 이점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반대로 자산 항목인 재고자산이나 건물은 실체가 있습니다. 실물을 확인하고 만져볼 수도 있죠. 부채 항목인 차입금이나 매입채무 같은 경우에는 손으로 만져지는 실물은 없지만 분명한 의무가 있습니다. 돈을 갚아야 할 상대방이 있고, 상대방에게 금액이나 만기, 결제조건 등을 확인할 수도 있죠.

그런데 자본은 어떠한가요? '이익잉여금'이란 게 실체가 있나요? 아님 자본이 상대방에 대한 권리나 의무인가요? 결국 자본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산과 부채의 결과물인 것이죠. 회사의 자산을 확인해 보니 100억 원이고, 부채를 확인해 보니 60억 원이라면 자본은 그냥 40억 원입니다. 자본은 그냥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숫자이죠. 그러므로 자산과 부채가 변하지 않으면 자본 스스로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없습니다.

회사가 증자할 때 '자본을 늘린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주식이 늘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증자를 하면 '현금'이라는 자산이 증가하기 때문에 이 자산만큼 자본이 증가하는 것이지, 발행한 주식만큼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죠.

만약 액면 5,000원짜리 주식을 4,000원에 발행(할인발행)하면 액면은 5,000원이 늘어나더라도 자본은 4,000원만 늘어나게 됩니다. 자본은 이렇게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잔액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자본항목 중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실체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자본금'인데요. 주식이라는 증서가 있고 표면에 5,000원이라고 적힌 실물이 있기 때문에 별도로 '자본금'이라고 구분해 표시합니다.

그렇다면 감자를 통해 회사의 자산이나 부채에 변화가 있을까요? 감자의 경우, 예탁원 등에 맡겨뒀던 주식이라는 '종이'를 찢어버렸을 뿐 회사가 돈을 받거나 주지 않습니다. 자산과 부채에 변화가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자본도 변하지 않는 것이죠. 다만 '자본금'은 감소합니다. 주식이라는 증서의 액면 금액 합계가 자본금인데, 주식을 찢어버렸기 때문에 그만큼 자본금이 감소하는 것이죠.

자본총계는 변하지 않지만 자본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다른 자본항목이 늘어나게 되는데요. 그것이 바로 '감자차익'이라는 자본잉여금항목입니다. 자본금 4억 원, 이익잉여금 (-)2억 원, 자본총계 2억 원으로 50% 자본잠식인 회사가 주식 수를 1/4로 줄이는 감자를 하면 어떨까요?

자본금은 1/4로 줄어 1억 원이 됩니다. 하지만 자본총계는 2억 원으로 변하지 않죠. 자본금 3억 원이 줄어드는 만큼 다른 자본항목이 3억 원이 늘어나야 하는데요. 이때 사용하는 것이 '감자차익'이라는 자본잉여금항목입니다. 3억 원이라는 주식을 돈 한 푼 주지 않고 공짜로 찢었으니 회사가 주주에게 남겨 먹은 셈이죠. 이제 회사의 자본총계는 자본금 1억 원의 2배가 되어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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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면, 감자로 벌어지는 자본항목의 변화는 총 3가지로,

1. 감자를 하더라도 자본은 줄어들지 않는다.

2. 감자를 하면 자본금이 줄어든다.

3. 감자를 통해 '감자차익'이라는 다른 자본항목이 생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자를 하는 이유는 자본금을 줄여 자본잠식을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를 당하기 때문에 그보다는 감자가 낫다는 것이죠. 그래도 초보자라면 이런 주식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이런 기업은 액면가보다 주가가 낮습니다. 따라서, 액면금액 이하로 거래되는 주식에는 손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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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인 회계사]

※사경인 회계사는 증권사 직원을 대상으로 재무분석과 가치평가 관련 강의를 4000시간 이상 진행한 여의도 증권가 강사다. 주요 저서로는 '재무제표 모르면 주식투자 절대로 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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