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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오후 한 詩] 핸드폰과 녹턴/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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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속에는 눈물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거주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봉화를 피울 줄 압니다 가끔은 신분을 숨기며 산에서 산으로 변방의 소식을 알리는 데 초를 다툽니다 때로는 내 감정을 건드려 용수를 쓰고 망나니가 내리치는 칼에 맞아 시구문에 버려집니다 몇몇은 당상관의 반열에 올라 온몸을 떨며 나를 만나러 옵니다 그들은 인공지능 시대에 동인과 서인으로 무리를 지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귓속말로 쑥덕이는 걸 좋아합니다 사화 같은 피바람이 불 때면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오늘 밤도 아나키스트들의 자진모리장단으로 상현달이 뜹니다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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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사람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사람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정성을 다해 낮과 밤을 이어 기도하는 사람들, 신의 말씀을 기다리는 사람들, 신의 말씀을 기다리고 전하고 되새기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 혹여나 신의 말씀이 사라질까 두려워 두 눈을 부릅뜬 사람들, 오늘 자신이 잘한 일과 자랑할 일과 부끄러운 일을 신에게 빠짐없이 실시간 고백하고 증명하는 사람들, 기뻐하고 슬퍼하고 탄식하고 안타까워하고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지옥철 속에서도 회의 중에도 한밤중 자다 깨어서도 먼 이교의 땅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오로지 신을 흠모하고 경배하는 사람들, 신이 깜빡이다 절명할 때까지 목줄기를 꼭 움켜쥐고 놓아 주지 않는 사람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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