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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민족소설의 최고봉은 조정래지만, 현대 정치사 실황중계자로는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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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문학평론가 임헌영,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펴내고 기자간담

최인훈 등 작가 11명 재조명…“거대담론이 문학서 밀려난 아쉬움 담아”

경향신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2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소명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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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선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이유가 안 나오잖아요. 이병주의 소설 <그를 버린 여인>을 보면 나와요. 대중들에게 소개가 안된 거죠. 역사와 정치, 사회를 다룬 거대담론이 문학에서 밀려난 아쉬움을 평론집에 담았습니다.”

원로 문학평론가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79)의 새로운 평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가 출간됐다. 제목과 같이 정치권력을 ‘몹시 꾸짖은’ 최인훈, 박완서, 이병주, 남정현, 조정래, 장용학 등 11명의 작가를 다룬 책이다. 임 소장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오늘날 문학에서 거대담론이 사라지고 미세담론에 안주하는 상황에서 전후 문학부터 오늘날까지 가장 정치적이고 역사의식을 가진 작가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했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한국 민족소설의 최고봉은 조정래지만, 현대 정치사의 실황중계자로는 이병주”라고 말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술친구였던 이병주는 1990년 <그를 버린 여인>에서 박정희란 인물의 친일, 좌익 행적과 여성 편력을 묘사한다. 소설에선 박정희의 밀고로 처형당했던 군 장교들의 자식이 암살단을 조직하지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발각된다. ‘박정희를 왜 죽여야 하느냐’는 심문 과정에서 이들은 민족의 적, 민주주의 적 등의 이유를 대면서 “그자를 없앰으로써 수천수만의 희생자를 미리 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김재규는 1979년 10월25일 자정 무렵 이들을 석방하고, 이튿날 암살에 나선 것으로 쓰여 있다. 임 소장은 “소설 진위를 가리기는 어렵지만, 당시 정황을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 소장에 따르면, 최인훈의 <총독의 소리>는 오늘날 한·일관계를 정확히 예견한 작품이고, 그의 <화두>는 미국 제국주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남정현은 오늘날 북핵 문제를 앞서 보여주고, 조정래는 친일 문제를 역사가보다도 통찰력 있게 드러낸다.

이렇게 한 명 한 명 시대를 관통한 작가들을 훑으며 임 소장은 아쉬움을 표현했다. “100년 뒤에도 남는 것은 결국 거대담론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의 베스트셀러는 역사의 풍화작용에 사라지잖아요. 문학비평에서도 오늘날 루카치 연구한 건 안 보고 우리나라 문학 담론을 다룬 것이 남아 있죠. 문학성이라는 게 따로 없어요. 거대담론을 공격적으로 잘 다루면 그게 문학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소장은 책머리에 “인문학 독자들조차 사돈네 쉰 떡 보듯” 하는 문학평론에서, 더욱이 정치 문학을 쓴 것은 “늘그막에 객기 한 번쯤 부려보고자 추려본 것”이라고 썼다. “신춘문예 소설을 봐도 재미가 없어요. 저는 직업적으로 보지만 일반 대중들은 왜 봅니까. 거대담론을 포기한다는 건 문학 독자를 문학 하는 사람에만 한정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영화 <기생충>처럼 소설가들 대신 영화들이 비판의식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반감도 있겠지만, 편견을 깨보고 싶었습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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