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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듀나의 내 인생의 책]②인간 등정의 발자취 - 제이콥 브로노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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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너 자신을 알라

경향신문

20세기엔 유명인사들이 주도하는 장편 다큐멘터리가 유행이었다. 가장 유명했던 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였다. 그 외에도 앨빈 토플러, 앨리스테어 쿠크, 제임스 버크, 케네스 클락, 제이콥 브로노프스키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책이 원작이었고 몇몇은 나중에 책으로 만들어졌다.

세이건의 명성과 영향력이 더 높았지만 나는 버크와 브로노프스키도 그만큼 좋아했다. 나는 논픽션 책을 쓸 때 여전히 버크의 스토리텔링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 1973년 나온 브로노프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코스모스>만큼이나 좋아했던 작품이었고 그다음 해에 나온 책 역시 자주 읽었다. 세이건이 교양이 풍부한 과학자였다면 브로노프스키는 수학자로 출발했지만 두 문화를 커버하는 르네상스맨이었다. <코스모스>가 우주의 역사 안에서 인간을 보았다면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과학자 입장에서 보다 가까이 다가가 인간의 역사를 바라본다. 정치가와 왕족 대신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주도하는 역사이다.

<인간 등정의 발자취>의 문장 상당부분은 즉흥적이었다. 책 내용이 다큐멘터리 촬영 현장에서 대본 없이 읊은 독백을 받아적은 것이라는 말이다. 이 책, 그리고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부분도 브로노프스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학살 현장을 보고 느끼면서 독백한 것이다. 이 현장성은 텍스트로 옮겨진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브로노프스키는 이 책이 나온 해에 죽었다. 그 뒤로 인류의 공포 대상은 핵전쟁 위험에서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로 옮겨갔다. 하지만 자신이 절대 지식을 갖고 있다고, 신의 지식을 갖고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지구와 인류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경고하고 가장 인간적인 형태로서 과학의 가치를 주장했던 이 책 내용은 그 어느 때보다 유효하다.

듀나 |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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