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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박완규의 책읽기 세상읽기] (43) ‘소크라테스 회상록’ - 좋은 삶과 좋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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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크세노폰은 고대 그리스의 군인이자 역사가, 철학자다. 스승인 소크라테스와의 첫 만남에 관한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가 길을 막고 “어디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느냐”고 묻고는 “어디에 가면 사람이 올바르게 되느냐”는 질문에 크세노폰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나를 따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크세노폰은 페르시아에 키루스 부대의 용병으로 참전했다가 그리스 용병들이 고립됐을 때 장군으로 선출돼 그리스로의 귀환을 이끈 무용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크세노폰이 남긴 ‘소크라테스 회상록(Memorabilia)’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에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나라에서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들을 들여왔으며,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됐다. 이에 대해 크세노폰은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불경한 짓을 하거나 불경한 말을 하는 것을 보거나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청년을 타락시켰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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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덕을 갖고자 하는 욕구를 심어주고 자신을 돌보면 진실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음으로써 많은 사람이 악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런 것을 가르치겠다고 자처한 적은 없고, 자신이 솔선수범함으로써 제자들에게 자기를 따라 하면 그들도 그렇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 그런 그가 어떻게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겠는가?”

이어 소크라테스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일러 주는 일화들을 소개한다. 먼저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훌륭한 정치가, 행정가와 유능한 통치자로 만들고 남과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미덕”을 “가장 고매한 미덕이자 가장 위대한 기술”이라고 했다.

소피스트인 안티폰이 소크라테스에게 어째서 자신은 정치를 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는 정치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자 소크라테스는 “안티폰, 어떤 때 내가 정치를 더 많이 할까요? 나만 혼자서 정치를 할 때일까요? 아니면 유능한 정치가를 되도록 많이 배출하려고 노력할 때일까요?”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남을 설득하여 돈이나 재물을 사취하는 것도 가볍지 않은 기만이지만, 아무 쓸모없는 자가 자기는 국가를 이끌 적임자라고 속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기만일세.” 장군으로 선출된 사람을 만났을 때는 정치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훌륭한 왕’이 되려면 자기 삶만 잘 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백성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왕으로 선출된 자는 자기만 잘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선출해준 사람들의 행복도 보살펴야 하니까요. 또한 모든 사람은 최대한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 싸움터로 나아가며, 그리고 이러한 목표로 이끌어달라고 장군을 선출한다오.”

소크라테스는 새로 장군으로 선출된 자에 대해 누군가가 “돈벌이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비난하자 “통솔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가 통솔하는 것이 합창가무단이든 재산이든 도시든 군대든 훌륭한 통솔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재산관리인을 무시하지 말게. 개인 업무의 처리와 공공업무의 처리는 양(量)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네. 다른 점에서는 이 둘은 같은 것이라네. 둘 중 어느 것도 사람들 없이는 해낼 수 없으며, 개인 업무에서 부리는 사람이나 공공업무에서 부리는 사람이나 같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네. 공공업무를 보는 사람은 개인 업무를 볼 때와 같은 사람을 부리기 때문이네. 그리고 이들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은 공공업무도 개인 업무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만, 부릴 줄 모르는 사람은 공공업무에서도 개인 업무에서도 실패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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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도 인상적이다.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는 지혜와 절제를 구별하지 않고 아름답고 좋은 것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과 추한 것을 알고 피하는 사람은 지혜롭고도 절제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소크라테스는 “나는 모든 사람이 가능한 것 중에 자기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행한다고 믿네. 그래서 나는 올바르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은 지혜롭지도 못하고 절제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서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그밖의 모든 미덕은 지혜라고 말했다”며 그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올바른 것과 그 밖의 미덕에 따라 행해지는 모든 것은 아름답고 좋은 것이니까. 아름답고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은 다른 것은 선택하지 않을 것이며, 아름답고 좋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런 것을 행할 수 없으며, 설령 행하려 하더라도 실패할 걸세.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은 아름답고 좋은 것을 행하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그런 것을 행할 수 없고 행하려 해도 실패하는 걸세. 이렇듯 올바른 것과 그 밖의 아름답고 좋은 것은 모두 미덕에 따라 행해지기에, 정의와 그 밖의 다른 미덕은 모두 지혜라는 것이 분명하네.”

‘소크라테스 회상록’은 스승에 관한 사실적 자료로 평가받는다. 플라톤도 스승에 관한 많은 기록을 남겼지만, 토마스 제퍼슨은 “우리는 오로지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에서만 순수한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된다”고 했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크세노폰이 ‘좋은 삶’과 ‘좋은 정치’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문제의식을 충실히 따른 정치철학자라고 평가한다. ‘소크라테스 회상록’이 지금도 널리 읽히는 이유일 것이다.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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