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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임병철 교수 “르네상스는 중세 끝? 근대 시작? 시선은 과거, 걸음은 앞으로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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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학에 가려진 정치사상사, 20세기 연구자 한스 바론 ‘집대성’

시민정신과 정치적 세계관 지닌 핵심 명제 ‘시민적 휴머니즘’ 주목

“중세·근대 이분법적 접근 벗어나 14~16세기 그림 그려 보자는 것”

경향신문

임병철 한국교원대 교수는 지난 17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공동체 안의 개인을 고민하지 않으면 자칫 진영논리나 집단행동으로 흘러갈 수 있는데 ‘시민적 휴머니즘’은 공동체 안 개인의 자유를 언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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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가 알고보면 ‘뜨거운 감자’예요. 흔히 르네상스와 근대를 연결하지만, ‘중세의 끝’인지 아니면 ‘근대의 시작’인지는 애매한 거죠. 저는 ‘시선은 과거에 뒀지만, 걸음은 앞으로 갔다’고 말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페트라르카…. 우리가 떠올리는 르네상스는 예술과 문학으로만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정치사상사에서도 르네상스의 유산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도서출판 길과 서양사학자 임병철 한국교원대 교수(51)는 “르네상스에 대한 새로운 혜안” 제시를 목표로 ‘르네상스 3부작’ 기획에 착수했다.

첫 책으로 20세기 최고의 르네상스 연구자 중 한 명인 한스 바론(1900~1988)의 대표작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기>(1955) 번역판이 나왔다. 지난 17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임 교수는 “철 지난 감이 들 수도 있지만, 책을 쓴 연구자의 문제의식이 더 중요하다”며 “역사가가 역사 현상에 대해 어떤 가치를 부여했고, 오늘날에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27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에선 1402년 이탈리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 도시공화국 피렌체는 ‘구엘프(교황파)’에 속했고, ‘기벨린(황제파)’이었던 밀라노는 강력한 전제정 아래 통일왕국을 꿈꾸며 팽창을 거듭했다.

15세기의 문턱에서 밀라노의 군주 잔 갈레아초의 침략에 홀로 맞서게 된 피렌체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으며 근대적 ‘공화주의’의 싹을 처음 틔웠다고 한스 바론은 설명한다. 바론의 핵심 테제인 ‘시민적 휴머니즘’은 참된 인간 존재의 완성을 위한 토대로서 도시 공동체를 강조하고, 그 속에서 시민정신을 함양하고 살아가는 도시 부르주아의 윤리적·정치적 세계관을 뜻한다.

“휴머니즘은 원래 고전 읽기입니다. 그런데 ‘시민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죠. 읽고 해석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전으로부터 삶의 모델을 가져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는 의미입니다. 금욕적 명상이나 자기 수양에 천착했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15세기의 시민적 휴머니스트들은 능동적인 사회 참여와 공공선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게 됩니다.”

경향신문

니콜라 푸생의 ‘떠오르는 태양을 찾는 장님 오리온’(1658)은 그리스 신화 속 오리온이 시력을 찾기 위해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탐색하는 모습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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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휴머니즘을 ‘수사학적 전통’이라는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학파와 달리 바론은 휴머니즘의 성장과 시민 정치의 발흥이라는 사회적 관계에 주목한다. 그의 주장은 역사학을 넘어 정치학에서도 ‘공화주의’ 논쟁을 촉발한다. “시민적 휴머니스트가 주장한 자유 개념은 공적인 문제에 참여해서 잠재 능력을 계발하고 그것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적극적 자유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유재산의 보호를 강조하는 존 로크의 소유적 자유주의와 구별됩니다. 기존 정치담론에 균열을 가져온 것이죠.”

바론과 비슷한 시기에 한나 아렌트도 공화주의를 들고 나왔다. “바론은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바이마르공화국 때 역사가의 길로 들어섰다가 나치가 집권하면서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청각장애 등 불운한 개인사가 겹치면서 대학의 정규 자리를 얻지 못하고 1970년 은퇴할 때까지 시카고 뉴베리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며 망명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론의 개인사가 그의 학문 연구 방향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짐작해볼 따름이다. “르네상스를 학술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19세기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입니다. ‘근대는 개인주의 시대이고, 인간을 발견한 르네상스가 근대의 시작’이라고 밝힌 것이죠. 그런데 부르크하르트는 개인주의의 성장에서 ‘미친 군홧발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해요. 유럽을 핏빛으로 물들이게 될 전체주의의 도래를 예감한 것이죠. 바론은 부르크하르트의 진단을 계승하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그 질병의 치유책을 찾으려고 노력한 것은 아닐까요.”

‘르네상스 3부작’ 기획은 임 교수가 직접 쓰는 <르네상스 정치사상사>와 16세기 저명 인사였던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으로 이어진다. “흔히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를 빼면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를 떠올리잖아요. 당시 <군주론>과 함께 널리 읽히던 책이 <궁정인>이었습니다. 인간의 사회적 예법을 다룬 일종의 교양지침서인데, 실제로는 궁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소개합니다. 핵심은 권력관계입니다. 유럽 궁정사회를 분석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에선 인간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조직화하면서 근대로 넘어온다고 설명하잖아요. 당대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르네상스를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도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르네상스는 중세일까, 근대일까.

“당시 문헌을 보면 혼재되어 있습니다. 이분법적 접근이 어려우니 14~16세기의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이죠. 다만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지식인들은 거인으로 표현되는데요. 그들이 거인인 것은 맞지만 우리가 그들보다 낫다고 얘기합니다. 고대의 지식을 배워서 한 뼘이라도 더 높아졌다는 것이죠. 그래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난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근대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고민이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지점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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