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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듀나의 내 인생의 책]③제인 에어 - 샬롯 브론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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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로맨스 소설의 뿌리

경향신문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하나의 장르이다. 그러나 이건 <제인 에어>를 과대평가하는 말이다. 이 평범한 외모의 가난한 가정교사 이야기는 당시 한창 인기였던 고딕 로맨스 장르에 속한다. 거대한 대저택 어딘가엔 수상쩍은 무언가가 숨어 있다. 이 존재는 후반부에 그럭저럭 이성적으로 설명이 되고 마지막엔 저택은 불탄다. 아, 물론 <제인 에어>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로봇 주인공의 미래 배경 이야기가 성장물이라는 이유로 SF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 이유로 고딕 로맨스가 아닌 뭔가가 되는 건 아니다. 왜 내가 이런 걸 굳이 설명해야 할까?

<제인 에어>는 유일한 고딕 로맨스는 아니다. 하지만 이후 나온 수많은 고딕 로맨스 소설들의 뿌리가 된 작품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훌륭하게 창조된 주인공이 나오는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소설이긴 하다. 당시엔 혁명적인 책이었다. 그래도 이 책이 완벽한 소설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모방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을 거다.

이 책엔 미래의 독자들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 로체스터는 정말 재미있는 캐릭터이긴 하다. 하지만 미친 아내를 가두고 중혼죄를 저지르려 한 악당을 굳이 주인공과 엮어야 할까? 왜 제인은 로체스터 부인의 끔찍한 사정을 알게 된 뒤에도 이렇게 차갑게 구는 걸까? 불만족스러움이 후대 독자들에게 고전에 대화를 걸게 하고 이는 곧 2차 창작으로 이어진다.

가장 훌륭한 <제인 에어>의 2차 창작인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가 모두 로체스터 부인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주는 작품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작가가 아무리 ‘남주(남자주인공)’를 좋아한다고 해서 독자가 고분고분 그걸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듀나 |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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