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경로 깜깜이 환자 속출… 검사 본격화 땐 확진 폭증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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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다소 비켜서 있던 미국에서도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마침내 첫 사망자가 나왔다. 지역전파 가능성이 커지면서 위기감도 한층 고조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과 이탈리아의 특정 지역에 대한 ‘여행 금지’ 조치를 취한 것도 미국 내 확산 우려가 그만큼 심각해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 정가에선 “미국 내 확진자 속출로 여론이 악화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더욱 강경한 봉쇄 조치, 즉 한국인에 대한 입국금지를 단행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미 워싱턴주 보건당국은 이날 50대 남성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초 중국 우한에서 60대 미국인이 숨진 적이 있으나 미국 땅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로버트 레드필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사망자는 코로나19 감염자와 긴밀히 접촉했거나 바이러스에 노출된 나라로 여행한 증거가 없다”고 말해 지역 감염에 따른 사망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에도 미국 내 지역감염은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달 26일 캘리포니아에서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가 처음 나온 데 이어 28일에도 캘리포니아주, 오레곤주, 워싱턴주에서 같은 부류의 환자가 각각 1명씩 확인됐다. 이런 징후는 바이러스가 지역 사회에 퍼져 있다는 신호로 해석돼 미국이 본격적인 검사에 나서면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일간 뉴욕타임스 등은 “그간 미국 각 주는 자체 검사를 시행하지 않고 CDC에 의뢰해 왔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검사비용도 1,400~3,000여달러에 달해 사실상 제대로 된 검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달 28일부터 자체 검사에 착수한 워싱턴주에선 적신호가 켜졌다. 사망자 외에도 양성 환자 2명이 더 나왔으며 이 환자들과 연관된 요양시설에서 직원 등 50여명이 유사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주 보건 당국이 전했다.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는 이날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역 감염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던 낸시 메소니에 CDC 국장은 “우리는 역사적 보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재차 경고했다. CDC에 따르면 일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탑승객 등을 빼고 미국에서만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는 아직 22명이다. 하지만 유증상자가 급격히 늘어날 조짐을 보여 확진자 폭발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비관적 전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26일 기자회견과는 달리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이 역력했다. 언론 등에 불안감 조성을 경고하는 기조를 유지하긴 했으나 독감 환자 흉내를 내며 코로나19를 폄하했던 당시와는 다르게 회견 내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과 이탈리아에 대한 여행 제한조치에 “적기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던 것도 사흘 만에 뒤집었다. 코로나19의 위협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달랬던 데서 공세적 조치로 대응 방식을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증시가 폭락세를 멈추지 않은 것도 그의 우려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코로나19 확산이 대선 이슈로 급부상해 다급해진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확진ㆍ사망자가 이어져 여론이 악화하면 한층 강도 높은 조치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적지 않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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