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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시시비비] 전도된 남북관계, 본질은 적대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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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북한의 2인자 김여정 제1부부장의 독설 섞인 담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로 친서가 하루 사이 남북관계를 극단으로 오가게 했다. 지난해 말 김 위원장의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지시 이후 개별관광, 교류협력, 방역협력 등의 아이템이 쏟아져 나왔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우리 일방의 판타지, 소재주의, 지엽적 아이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본질로 들어가는 '정면돌파'가 필요하고 북한도 그 얘길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향후 대북정책은 실질적 적대 해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4·27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은 '전쟁 없는 한반도' 군사적 대립과 적대를 해소하기 위한 행동 원칙들을 만들어 냈다. 과거 정권들이 실질적 적대 해소보다는 주로 정략적 차원에서 대북정책을 수단화하거나 국면에 일희일비하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정략적 제의만 있고 행동을 수반하지 않는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실질적 적대 해소에 초점을 맞춘 진정성과 일관성을 갖춘 정책이 필요하다.


북ㆍ미로 수렴되고 의존하는 '비핵화' '종전선언' '평화협정'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에 앞서 남북한이 할 수 있는 '적대해소'가 중요하다. '사실상의 종전선언 또는 사실상의 평화협정'을 현실화하는 일관된 정책 추진이다.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서'는 분단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의 군비통제에 관한 실천적 합의를 담았다. 구체적 행동 지침과 매뉴얼을 담은 '실천적 선언'이란 점에서 매우 획기적이다. 원만히 이행된다면 사실상의 '종전선언' 효과를 갖는다. 상호협력을 통해 안보를 창출하는 '협력안보'로의 전환이다.


'9·19 군사합의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합의해 향후 지속적으로 군비통제 전반을 논의할 수 있게 했다. 이 군사합의는 여러 정세 조건이 충분히 충족되지 않거나 북·미 관계의 개선이 지연되더라도 남북한이 군비통제의 실천을 통해 묵묵히 실질적 종전으로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합의와 실천을 통해 사실상의 종전선언 상황을 현실화함으로써 미국과 국제사회에 불가침과 비핵화, 그리고 평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한 사이의 전쟁 위협 해소는 북ㆍ미 관계에 종속된 부수적 사안이 결코 될 수 없다. 정전협정 준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전쟁 위협과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는 데 있어서는 더욱 당당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남북한의 실질적 적대 해소를 위한 행보가 북·미 관계를 견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미 관계 속도에 종속될 경우 북·미관계 교착 시 남북관계마저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한 발 정도 앞서가서 북·미 관계 진전 속도와의 일정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북·미 관계를 견인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속도와 타이밍은 중요하다. 남북한 군비통제만 지나치게 앞서갈 수는 없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의 해소는 '북한의 비핵화' '미국의 대북 군사적 위협 해소' '남북한의 단계적 군비통제'가 선순환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남북은 최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 적대 해소의 합의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 평화체제는 비핵화를 통해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평화 실천의 제도화, 실질적 군사적 대결구도 제거, 상호 불신의 인식구조를 바꾸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실질적 적대 해소 노력은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의 비가역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 본질이 회피된 채 지엽적 아이템에 매몰되는 '전도된' 대북정책으로 시간을 소모하는 데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실질적 적대 해소와 새로운 관계 수립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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