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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과학을읽다]박쥐보다 못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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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부분의 감염병은 박쥐가 숙주 노릇을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충남 서산시 한 폐광에서 집단으로 겨울잠을 자고 있는 관박쥐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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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박쥐같은 인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줏대 없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가 하는 인간들을 비하하면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인간이 박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이런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은 인간이 박쥐라는 종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쥐는 날개가 달려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지만 조류가 아닌, 사람과 같은 포유류입니다. 이런 박쥐의 특성을 이용한 전래동화가 많이 있지요.


대표적으로 육지동물이 강할 때는 자기도 포유류라면서 육지동물편에 서고, 새들의 힘이 강할 때는 자기도 날개가 있으며 날아다니는 만큼 조류라고 주장하면서 새의 편에 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류와 포유류가 서로 싸울 때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했다는 동화입니다.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숙주가 박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쥐에 대한 인간의 혐오감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 박쥐는 코로나19 뿐 아니라 이전의 여러 감염병의 숙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2012년 메르스, 그 이전의 에볼라와 니파도 모두 박쥐가 숙주였습니다. 사스는 박쥐와 사향고양이나 닭과의 접촉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에볼라는 박쥐와 원숭이, 메르스는 박쥐와 낙타, 뇌염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니파는 박쥐와 말·돼지의 접촉이 인간과의 접촉으로 이어지면서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로 인간에게는 가축이라고 할 수 있는 동물을 중간 숙주로 박쥐가 인간들에게 악몽을 떠넘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쥐는 거의 모든 바이러스의 숙주이면서도 자신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놀라운 면역체계를 갖춘 동물입니다.


박쥐는 척추동물이면서 포유류입니다. 척추동물의 면역세포에서는 '인터페론'이라는 단백질이 만들어지는데 이 단백질은 바이러스와 기생충 같은 외부의 침입자들에 맞서 개체를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주로 항바이러스 작용을 하고, 감염된 세포와 인접 세포 사이에 개입해 바이러스 복제를 제한하기도 합니다.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은 개체가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인터페론을 생성하는데, 박쥐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아도 세포에서 지속적으로 인터페론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박쥐가 바이러스에 강한 또 다른 이유는 장거리 비행 특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박쥐는 밤에 최대 350km 이상을 비행하는데 이 때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신진대사율과 체온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비행 중 박쥐의 체온은 40℃ 이상으로 올라 바이러스의 정착을 막습니다. 자신의 생존 환경에 맞춰 강력한 항바이러스 체계를 갖춘 것입니다.


박쥐는 지구상의 포유류 6000여종 가운데 20% 정도인 1200여종이나 존재합니다. 이처럼 많은 종이 저마다 다양한 바이러스를 품고 있는데 축축하고 좁은 동굴이나 정글에서 최대 100만 마리까지 무리지어 생활하기 때문에 한 개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빠르게 확산됩니다.


이들은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에 분포하면서 인간의 가축과 접촉해 그들의 피를 빨거나 그들과 같은 먹이를 노리면서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이지요. 바이러스를 전파한다는 개념을 벗어나 살펴보면, 박쥐들은 생태계에 아주 유익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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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노숙자에게 도시락과 마스크 등을 지급하고 있는 봉사자들. 이런 봉사자들의 정성이 박쥐보다 못한 몇몇의 행동 때문에 빛이 바라지 않기를 바랍니다.[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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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종은 과일을 먹고 과일의 씨앗과 배설물을 비행 중 숲에 퍼뜨리면서 숲을 건강하게 유지시킵니다. 동굴에서 사는 박쥐들은 자신들의 배설물로 다른 곤충과 생명체를 먹여 살리기도 합니다. 자신은 강력한 면역체계로 감염되지 않으면서 인간의 가축이나 인간을 직접 접촉함으로써 바이러스를 전파시킨 것은 박쥐의 탓이 아닌 인간의 탓입니다.


인간은 일상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박쥐를 굳이 찾아내 포획합니다. 뛰어난 효능이나 맛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약재나 식재료로 삼는 것이지요. 생태계에서 박쥐의 역할은 적지 않습니다. 박쥐의 영역을 침범해 박쥐를 못살게 군 것도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결과입니다.


코로나19 감염 검사를 받으면서 신천지 교인임을 감췄다가 뒤늦게 드러나 감염 경로를 재추적하거나, 확진 판정을 받고도 자가격리 방침을 어기고 출근을 강행한 사람들 때문에 코로나19 퇴치가 더 늦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박쥐보다 면역체계가 약하면서도 박쥐보다 못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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