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스와프, 외환시장에 제한적 효과" 신중한 의견 적지 않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외환시장과 증시가 일제히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전날 1300원 근처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20일 오전 1250원대로 낮아졌고, 코스피 지수도 1500선을 회복했다. 달러 가뭄이 일어난 상황에서 한미 통화스와프가 단비가 된 셈이다. 2008년 미국과 맺은 통화스와프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했던 분기점이 됐던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조성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2008년 당시의 위기와 지금은 다르다는 신중한 의견도 많다.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이 외환시장을 통해 국내로 전이됐던 당시 상황과 코로나19 확산·저유가로 인한 현재의 실물경제 충격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가 대응 발언이 전날 미 증시를 끌어올리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한미 통화스와프가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를 낮출 수는 있어도 코로나19 백신 개발이나 산유국의 감산합의 등 근본적인 대책이 없으면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다.
이주열 총재가 20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과 관련한 브리핑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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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해결사로 등판한 한미 통화스와프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과 처음으로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맺어 금융시장 안정에 큰 효과를 봤다. 통화 스와프란 마이너스 통장처럼 언제든지 달러를 꺼내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한국과 미국은 필요할 때 자국 통화를 상대방 중앙은행에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외화를 빌려 올 수 있다. 일종의 ‘제2의 외환 보유고’다. 때문에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은 리스크회피가 극도로 심해지면서 달러 자산으로 쏠리는 투기심리를 누그러뜨리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에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으로 넘어오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서 가장 위기였던 부분이 환율이었다. (때문에 통화스와프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달러 유동성에 대한 불안심리가 치솟으며 환율은 2008년 8월말 1089원에서 계약 체결 당시인 10월 말 1468원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통화스와프가 발표된 당일 원·달러 환율은 177원 폭락하면서 12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불안심리가 완화되면서 급등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은 통화스와프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고, 계약 종료시점에는 1170원까지 하락했다.
2008년 한미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뿐 아니라 패닉장세에 시달리던 코스피에도 단비가 됐다. 다만 통화스와프로 외환시장의 단기적인 불안감은 해소했지만, 달러강세와 미국 금융시장 불안이라는 근본 원인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김진일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는 "2008년에도 통화스와프는 (미국 금융시장 불안이라는) 근본상황이 아닌 시장의 불안이 한국에 증폭돼 파급되는 측면을 해결하는 것에 그쳤다"고 말했다.
당시 통화스와프 계약은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 유동성 위기 우려가 고조되면서 체결됐다. 2009년 4월 30일까지 6개월간 한시적으로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2010년 2월 1일 종료됐다. 연준의 통화스와프 자금은 2008년 12월 4일부터 2009년 1 월 22일까지 5차례에 걸쳐 공급됐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
◇전문가들 "2008년 만큼의 효과는 어려워… 달러 급등세 막는 수준"
한은과 미 연준이 체결한 통화스와프는 당장 금융시장의 불안심리를 막아내는 효과를 내고 있다. 전날 국내 증시에서는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동반 서킷브레이커가 동원됐지만 이날은 간만의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다. 코스피는 오전 11시 21분 전거래일대비 66.05포인트 오른 1523.69에, 코스닥은 같은 시각 23.72포인트 상승한 452.17에 거래되고 있다. 전날 1300원에 육박했던 환율은 1250원대 후반을 기록 중이다. 한미 통화스와프가 달러 경색에 물꼬를 터준 만큼 달러 급등으로 인한 불안심리도 어느정도 완화된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2008년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위기 때처럼 외환시장 안정에 분명한 효과를 내겠지만 지금의 위기상황은 실물경제에서 파생됐기 때문에 더 궁극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일 교수는 "통화스와프가 달러 경색에 대한 미래의 불안감을 상당부분 낮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해외에서 코로나19 확진자수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경제에 불안감을 가져오는 기초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했다.
특히 앞으로 각국의 1분기 경제지표가 발표될 예정이어서 실물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전날 미국 노동부에서 발표한 주간 실업보험청구자수는 지난주 28만1000명을 기록, 일주일 만에 7만명이 늘었다. 2년 반 만에 최고치였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급속하게 확산된 여파로 그 충격이 실물경기 지표로 나타나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수출지표와 3월 산업활동동향, 경상수지 등 실물경기의 주요지표가 부정적으로 나오면 경제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제적인 충격이 지속되는 상황을 아직은 확인을 못했지만 이제 각종 지표가 나오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며 "하루 전 미국 실업 지표에서 나타난 것처럼 충격이 수치로 확인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들이 본격적인 회복기에 들어서기도 전에 코로나19로 또 한 번 타격을 받았다는 점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 수출은 2018년 12월부터 14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실적이 급락했다. 우리나라 시총 3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230조원으로 전년 대비 5.5%, 영업이익은 28조원으로 52.8% 감소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국인이 국내에서 투자금을 빼내는 건 미국과 해외 이슈도 있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버티기 어렵다고 보는 시각도 반영돼 있다"며 "높은 수익을 올리던 기업들이 지난해 침체기를 겪으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조은임 기자(goodnim@chosunbiz.com);최효정 기자(saudad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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