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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단독] 금감원, 기업 신용등급 전수조사… 회사채발 위기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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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국내 기업의 신용등급 변동 가능성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업 실적이 고꾸라지자 대규모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 기업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대출은 물론 회사채 신규 발행, 만기 연장 등도 어려워진다.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 최악의 경우 부도가 날 수 있어 코로나19발 연쇄 기업 구조조정이 닥칠 수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가 평가하는 모든 기업의 신용등급 ‘트리거(trigger)’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용등급 트리거란 신용등급 변동 검토 지표로, 기업마다 업황 등에 맞춘 상·하향 트리거가 있다. 신평사는 기업 상태가 트리거에 도달하면 일시적 현상인지, 장기적 추세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용등급을 결정한다.

금감원은 각 기업의 현재 상태가 상·하향 트리거 중 어디에 얼마나 근접했는지까지 세세하게 판단해줄 것을 신평사 측에 요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실물 경제가 크게 위축된 상황"이라며 "신평사들이 기업에 대한 선제적 정보를 갖고 있는 만큼 (실물경제 위축이) 실제 기업 실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니터링 차원에서 요청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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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이 신용등급 하향 요인은 물론 상향 요인까지 요청하긴 했지만, 현 상황에서 신용등급이 오를 기업보다는 떨어질 가능성이 큰 기업이 많다. 이 때문에 금융권은 금감원이 대규모 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우려해 해당 기업에 대한 현황 파악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민정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기업 실적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지만 현재 트리거엔 이같은 상황이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즉 지금 기준대로 적용하면 신용등급 강등이 쏟아질 수밖에 없어 금감원이 시장 안정 차원에서 현황 파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면 추가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이 막히거나, 가능하더라도 이전보다 더 많은 이자를 감내해야 한다. 기존 대출이나 회사채의 만기 연장도 어려워질 수 있다. 유동성 위기에 몰려 돈을 갚지 못하면 결국 부도까지 날 수 있다. 특히 오는 4월이 고비다. 4월은 통상 1년 중 회사채 발행이 가장 많은 달인데, 그만큼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도 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4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국내 회사채 규모는 6조5495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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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비금융 기업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지난해 3분기 기준 101.1%를 기록했다./B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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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될 경우 쌓여있는 기업부채가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본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한국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금융법인 제외)은 101.1%로, 2008년 금융위기 수준(4분기 95.3%)을 넘어섰다. 1999년 1분기 113.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이 비율은 2006년 1분기 74.2%까지 낮아졌지만, 이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개별기업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CJ제일제당(097950)이다. 지난 19일 제일제당 주가는 26.19%(5만5000원) 급락한 15만5000원에 마감했다. 조미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 전반적으로 차입금 비율이 높은 업체들에 대해 크레딧 리스크 우려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CJ제일제당의 회사채는 35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날 CJ제일제당 주가 급락에 한때 시장에서는 ‘파산설’까지 불거지기도 했다.

개별 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넘어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될 경우 상당수의 기업이 정리되면서 산업 차원의 구조조정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현재 항공산업만 보더라도 몇년간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여러개 생겨났는데, 이미 유동성 위기가 닥친 것을 보면 최소 한두곳은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단기 회사채인 CP(기업어음) 매입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것도 회사채발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서다. 당장 현금 확보가 필요한 기업의 단기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금융권이 공동 출자해 우량 회사채에 투자하는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하고,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회사채 발행을 지원하는 채권담보부증권(P-CBO)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한 연구원은 "당장은 기존 지원프로그램과 국책은행 등을 활용하겠지만, 사태가 지속될 경우 미국처럼 CP 매입 등 보다 직접적인 방식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fac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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