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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정부, 세계잉여금으로 론스타 배상 검토… "편법 시도" vs "단순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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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가’ 발간
책 출판으로 기재부 vs. 신재민 2차전 시작되나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론스타 소송’ 배상금과 관련해 "세계잉여금(거둬들인 세금 중 지출하고 남은 돈)을 활용해 국회를 건너뛰고 배상하려던 검토가 정부 내부에서 있었다"고 주장했다. 론스타 배상금은 패소할 경우 최대 5조원 규모로 전망된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 2018년 말 정부의 KT&G 사장 교체 시도와 청와대의 적자 국채 발행 강요 의혹을 제기한 인물이다.

하지만 기재부와 박성동 전 기재부 국고국장은 "세계잉여금 사용처는 국가재정법에 명시돼 있는 사안"이라면서 "법에 정해져 있는 절차와 순서대로 해야하는 일이고 국회의 사후 검토를 받으므로, 국회를 건너뛸 수 없는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국가 리스크 대응 차원에서 론스타 소송 배상금에 활용하는 것이 세계잉여금 사용 용도에 부합하는지 검토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결론냈다는 것이다.

조선비즈

작년 1월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서울 강남구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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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전 사무관은 최근 ‘왜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가’라는 저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신 전 사무관은 "재직 당시인 2018년, 상부에서 세계잉여금을 론스타 배상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파악하라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았다"면서 "대통령 보고 문건을 위한 경제부총리의 지시였다"고 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없던 일이 됐지만 편법적인 국가재정 운용 시도"라고 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2012년 한국 정부 때문에 외환은행을 제때 팔지 못해 46억7950만 달러(약 5조2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냈다. 이 소송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신 전 사무관은 패소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배상금 재원을 두고 기재부 내부 검토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행정부에서 처리하는 세계잉여금을 론스타 배상금에 사용하려는 생각은 행정부의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국회를 우회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판단했고, 검토 과정을 거쳐 ‘세계잉여금으로 상환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썼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박 전 국장은 "세계잉여금을 어떤 용도로 처분할지는 그 다음해 국무회의 의결 안건이면서 나중에 국회에 보고를 해서 정당성에 대해 사후 검토를 받아야 하는 사안이기도 하다"면서 "편법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박 전 국장은 이는 당시 정부가 고민했던 여러가지 대응 방안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잉여금 처리 계획을 검토하는 차원에서 들여다 봤을 수는 있었겠다"면서 "(론스타 소송 배상금 재원 마련 대책에 대해 검토하다가)확정채무가 아니니 하지 말자는 쪽으로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당시 공무원들은 국가의 재정 건전성이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2018년 초에 론스타 소송의 판결이 임박했다는 분위기가 전해졌고, 기재부 내 관련 모든 실·국들이 재원 마련 대책을 검토했다"면서 "재정당국 입장에서는 가능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작업을 해야 했으므로 예산실에서는 추경 또는 예비비를, 국고국은 세계잉여금을 사용할 수 있는지 그 방안을 각각 조사해봤던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신 전 사무관은 "부총리의 지시에 반하는 보고서인 만큼 다시 쓰라는 지시가 내려와 재보고를 준비 중에 추가경정예산(추경)이 결정됐다"며 "세계잉여금이 추경 재원으로 쓰이게 되면서 보고서 자체가 없던 일이 됐다"고 했다. 그는 이를 두고 "제대로 된 토론은 없었고 지시와 수용만 있던 망가진 정책을 만드는 그 자체였다"고 했다.

론스타 배상 검토 외에도 그는 ‘갑 중의 갑 기재부 안 뒷 얘기’를 쓰겠다며 "해외 출장 시 사무관에게 비데를 챙기게 한 간부", "출장지에 딸을 데려가고 비용 일부만 낸 간부", "업무 시간 직원을 동원해 이사한 간부", "자신이 나간 테니스 대회에서 직원을 응원단으로 동원한 간부" 등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술자리에서 한 간부가 먹던 얼음을 받아먹은 사무관이 ‘성은을 입었다’고 했고, 옆자리 사무관이 서운해하자 간부가 입에 머금은 얼음을 옆 사무관에게도 줬다"며 "통제받지 않고 감시받지 않은 행정부는 이렇게 파편화되고 사유화되며, 고위 공무원은 ‘성은을 내리는 존재’가 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민아 기자(wo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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