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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경제 심폐소생 급하다] 강사 월급주려 적금 깬 학원 원장 "대출 알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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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원 권고 한달째 이어지며 임대료·강사료 걱정

학생 이탈도 고민…대출보다 직접적 지원 요구

뉴스1

서울시내 학원가의 모습. 2020.3.18/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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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형진 기자 = 서울에서 중소형 학원을 운영하는 K씨(51·여)는 최근 적금을 깼다. 강사들 월급을 주기 위해서다. K원장의 학원은 초중등부와 고등부를 함께 운영한다. 고등부 강사들은 대부분 수강하는 학생 수에 비례해 강사료를 받지만 초중등부는 월급제다. 그런데 정부 권고에 따라 지난달 말 휴원을 하면서 수강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K원장은 22일 "국민적 재앙이라 임대료는 원장이 안고 갈 수밖에 없는데 강사들 월급은 줘야 해서 마이너스 대출을 알아보는 원장들도 많다"라며 "수강료는 선불이고 강사료는 후불이라 3월은 버티었는데 장기화되면 대출을 알아보는 원장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동네 학원들이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학교 개학을 지난 2일에서 9일로 미뤘다가 다시 23일로 연기했다. 현재 새학기 개학은 잠정적으로 4월6일로 잡힌 상태다. 학교만이 아니다. 학원에도 함께 휴원을 권고하고 있다. 처음 휴원 권고를 내린 게 지난달 23일이니 벌써 한달째다.

하지만 휴원 권고가 한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다시 문을 여는 학원들이 늘고 있다. 서울지역 학원의 경우 지난 13일 42%의 학원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3주가 넘어가면서 휴원율이 25%로 떨어졌다. 학원 4곳 중 3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학원 원장들은 "학원은 한달 벌어 한달 먹고사는 구조인데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수강료로 먹고 사는 구조…초등학생 대상 학원이 더 타격"

학원은 수강료로 먹고 사는 구조다. 월말에 학생들에게 수강료를 받아서 다음달에 강사들 월급을 주고 임대료를 낸다. 수강료가 들어오지 않으면 곧바로 재정적 타격을 입는다. 그런데 수강 신청 시기인 지난달 마지막주부터 휴원에 들어가면서 타격을 받았다.

서울에서 중형학원을 운영하는 또 다른 K씨(49)는 "지난달 말에 휴원을 했으니 월말에 들어와야 하는 학원비가 못 들어왔다. 한달 정도 여유가 있는 학원은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원은 학원비를 받아야 운영을 하니 다시 문을 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K씨는 "이번 달은 학원비도 30% 할인해줘 사실은 적자"라며 "이걸 감당할 수 없는 학원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학원의 피해가 크다. 경기 구리에서 초중등부와 고등부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H씨(45·여)는 "초등학생은 개학하면 보내겠다는 학부모가 대부분이라 초토화됐다"라고 말했다.

학부모 요구도 있어 문을 열고는 있지만 중고등부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H원장은 "중고등부는 문은 열고는 있는데 나오는 학생들은 반토막이라 문 열고 손해 보는 구조"라며 "임대료 등 고정비용은 100% 그대로 나가야 해 카드 빚을 내서라도 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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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유치원·초중고·대학교의 개학 및 개강이 연기된 가운데 지난 18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학생들과 수험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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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이탈하면 복귀 안돼…한두 명 와도 열어 놓을 수밖에"

학원 원장들은 문을 여는 게 단순히 지금 당장의 수입 때문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돼 다시 정상적으로 학원을 운영해야 할 때가 더 문제라는 얘기다. 안 그래도 과외 등으로 빠져나가는 학생들이 많은데,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 이들이 다시 학원에 나올지 걱정하고 있다.

중소형 학원장인 K씨는 "중·고등학생의 경우 개학하고 나서 학습을 따라가지 못할까 불안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겠다고 하는 학부모도 많다"라며 "휴원해 학생들이 한번 이탈하면 복귀를 안 하니까 작은 학원들은 폐업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H원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후 학생들이 다시 돌아오면 다행인데, 한두 명 앉아 있어도 문을 열어 놓을 수밖에 없다"라며 "매출을 메워야 한다는 마음보다 학생들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고민도 있다.중소형 학원장 K씨는 "고등부의 경우 3학년이 되면 대입 수시모집 준비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1~2학년 2년간 다니는 구조"라며 "2~3월에 새로운 1학년이 들어와야 학원 운영이 되는 구조인데 올해는 신규 학생이 전멸이다"라고 토로했다.

H원장은 "2009년 신종플루 사태가 끝나고 중소형 학원들이 많이 문을 닫았다"라며 "그때가 '감기'라면 이번에는 '전신마비' 수준이다. 적자 걱정이 아니라 폐업도 염두에 두고 있어서 절박함이 다르다"라고 전했다.

◇"식당에 손님 없으면 안타까워하면서 학원은 문 열면 비난"

정부가 학원에 휴원을 권고하며 내놓은 지원책은 거의 간접적인 것들이다. 휴원한 영세학원에 소상공인 경영안정지금 신청 요건을 완화하고 저금리 대출을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20일에는 교육부와 농협, 신용보증재단이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교육서비스업계 소상공인 지원 특례보증상품'을 출시했다. 연평균 매출액이 10억원 이하인 영세학원에 저금리 대출을 지원한다.

초기에는 '어차피 갚아야 할 돈'이라며 거들떠 보지 않던 중소규모 학원장들이 최근에는 저금리 대출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도 학원계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H원장은 "한 원장이 휴원 증명서를 떼려고 교육지원청에 갔더니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학원계는 보다 직접적인 지원책을 원했다. 중소형 학원장인 K씨는 "정부가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있는데 실질적 도움은 안 된다"라며 "휴원에 동참했던 학원은 일시적으로 종합소득세 감면 같은 혜택을 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학원 원장들은 경제적 지원책 못지 않게 학원을 바라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 시선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중소형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K원장은 "학원도 똑같은 자영업자인데 식당에 손님이 없는 것은 안타까워하면서 학원은 문을 열면 비난한다"라며 "아이를 보내겠다는 학부모도 있어 문을 열면 사회적 비난에 더 많은 상처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중형학원장 K씨는 "조심스럽지만, 우리나라는 진학 지도에서 사교육의 역할이 큰 상황"이라며 "그런데도 자꾸 사교육을 불법적 요소로 보고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로 몰아가는 것을 불식시켜 주는 것이 가장 큰 지원"이라고 말했다.
jin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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