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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정보격차, 불편함의 문제 아닌 불이익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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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봉섭 한국정보화진흥원 연구위원이 3월 15일 서울 양천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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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정보격차)’라는 말이 등장한 건 25년 전이다. 1995년 미국 <뉴욕타임스> 개리 앤드루 풀 기자가 정보를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의미하는 용어로 처음 썼다. 같은 해 7월 미국 상무부가 정책보고서에서 정보격차를 공식적으로 언급했고, 이후 논의가 확산됐다.

한국에선 2001년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이 나오면서 정보격차 개념이 정립됐다. 저소득층·농어민·장애인·노령자 등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정보통신망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과 정보 이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2009년 폐지된 이 법은 ‘국가정보화기본법’에 녹아 있다. 정보격차의 틈을 메꾸기 위한 정보화 교육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정보격차를 해소하려는 정부 주도의 노력은 ‘접근’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 정보 취약계층의 디지털 접근 수준은 일반 국민의 97.1%다. 대부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가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다.

김봉섭 한국정보화진흥원 연구위원(54)은 정보통신기술에 의한 이용자의 인식과 태도 변화를 탐구하는 언론학 박사다. 3월 15일 서울 양천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이제는 정보를 원하는 사람과 원하지 않는 사람의 문제로 봐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체계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정보격차의 현실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난 것 같다.

“고령층에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면서 세대 간 정보격차가 좁아질 여지가 있는데, 새로운 기술들은 계속 생겨난다. 컴퓨터에 국한해 얘기한다면 격차를 논의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모바일이 생겨버렸다. 마스크앱을 생각해보자. 마스크 공급은 하는데 정보를 앱으로 준다. 앱 만드는 데 얼마 안 걸렸다. IT 기술이 워낙 빠르게 진화하다보니 다양한 이들의 니즈를 잘 못 맞춘다. 결국 두 가지다. 첫째는 개발할 때 정보 취약계층을 고려해야 하고, 둘째는 그들도 이용할 수 있게끔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배우라고만 하는 건 너무 톱다운(Top-Down·하향식) 방식이다.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고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상황에선 노인들이 정보를 얻지 못해 불안감이 더 클 수 있다.”

-예전에는 접근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활용을 강조하는데.

“정보격차 논의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정보 소외계층에겐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했다. 꼭 인터넷을 써야 할 이유가 없었다. 불편함만 견디면 됐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온라인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불이익’이 돼버렸다. 공항에서 발권할 때 키오스크가 아닌 카운터를 이용하면 돈을 더 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보를 원하지 않는 사람과 원하지만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편입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생겼다. 이는 ‘리터러시(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와 연결된다. 이 안에는 윤리적 행동, 적극적인 정보 생산과 참여 등 다양한 형태의 역량들이 있다.”

-정보를 원하지 않는 자는 누굴 말하나.

“일부러 ‘011’ 번호를 쓰는 경우같이 알면서도 원하지 않는, 자기 주관과 철학이 강한 사람을 떠올리기 쉽다. 문제는 자기가 원하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알려주고 참여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참여만 하게 하다보니 ‘정보 편식’ 등의 문제가 생겼다. 이분들이 정보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끔 정부든 기업이든 시민단체든 나서줘야 한다고 본다. 정보의 활용 문제로 가면 개인의 의도나 동기가 들어 있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불편이 불이익이 됐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니 정부가 더 깊숙이 개입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인식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기가 등장하면서 또 다른 문제들이 나타났다. 모든 게 키오스크로 바뀌었다고 가정해보자. 노인들이 음식을 주문하려고 하는데 잘 안 돼서 포기한다. 키오스크를 통해 데이터가 모인다는 게 문제가 된다. 기업에선 어떤 메뉴 매출이 높고 손님 많은 시간대를 분석해 서비스를 바꿔나간다. 노인들의 데이터가 들어가지 않기 시작하면 이들이 서비스를 받기 어려워진다. 정보를 가진 자와 가지지 않는 자 간의 권력 불평등 구조가 생기는 현상도 우려스럽다. 이제는 인간과 기계가 대화하는 시대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기계가 받아들여 학습한다. 빅데이터 시대는 어떤 데이터가 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 정보 취약계층의 데이터가 들어가지 못하면, 이들을 위한 사회는 생겨나지 않는다. 이들을 위한 정책은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지 않냐는 목소리도 있다.

“컴퓨터와 앱이 닮은 것 같지만 내 아이와 나조차 지식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르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중에 블루투스 이어폰이 갑자기 작동을 멈췄다. 대구에 매뉴얼이 있어 나중에 내려가서 봐야지 생각했다. 아들에게 작동이 안 된다고 말하니 “구글에 ‘How to restart 모델명’ 쳐보라”고 하더라. 사고의 패턴 자체가 다르다. 옛날처럼 보급만 해선 안 된다. 흔히 젊은 사람들에게 어르신들 집회를 가리키며 저렇게 해야 이득이 되는 정책도 나온다고 말하곤 한다. 이제는 거꾸로다. 젊은이들의 모든 것이 데이터 분석으로 갈 수 있다. 거리에 나온 노인들의 목소리는 데이터에 들어가지 않는다. ‘노인들도 키오스크 쓸 수 있게끔 교육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공급자적 측면에서도 분명히 고민하고 적용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수용자 책임으로만 몰고 가거나 공급자 잘못으로만 몰고 가긴 어렵다.”

-공급자적 측면에선 정보격차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키오스크가 효율성과 편리성을 가져왔지만,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다는 거다. 정부는 이를 촉진할 수 있다. 미국처럼 정부 조달상품은 정보통신 접근성을 인정받은 제품만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보건당국이 코로나19 브리핑을 하면 수어통역사들이 계신다. 그렇게 하며 장애인 정보격차를 줄이고, 인식이 생기고, 사회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토대가 생긴다. 기업은 사회적 공헌 차원에서 고민하고 제3섹터와의 협력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코레일이 서울디지털재단과 업무제휴를 해 승차권 자동발매기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노인들도 편하게 쓸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한 것이 그 예다.”

-결국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선 활용능력이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이 능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다고 보나.

“흔한 오해 중 하나가 과학과 기술은 객관적이고 중립이라는 것이다. 과학에도 버그가 있고 개발자의 바이어스(편향)가 들어간다. 이제는 나의 가치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IT 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전략적 기술’을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필요로 하는 역량은 획일적이지 않다. 기기를 켜고 끄는 건 집합 교육을 하면 된다. 개별적 이해관계가 다 다른 상황에선 한꺼번에 모아서 교육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회 전체의 관심이 필요하다. 외국에선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생긴다. 중학생들이 노인들과 1 대 1 멘토링을 하기도 하고, 시민단체에서 소규모지만 전략적으로 교육을 하기도 한다. 가장 좋은 건 정보 취약계층과 밀착돼 있는 집단과의 연계를 통해 정부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그 안에 시민과 기업이 들어와 거버넌스 체계를 이루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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