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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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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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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성진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중국의 4대 미인이라고 하면 흔히 서시, 양귀비, 왕소군, 초선을 꼽는다.

이 중 왕소군은 전한(前漢) 원제 때의 궁녀였다.

흉노와의 친화정책을 위해 흉노왕 호한야 선우에게 시집가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 뒤 호한야가 죽자 흉노의 풍습에 따라 왕위를 이은 그의 정처 아들에게 재가하여 두 딸을 낳고, 그곳에서 생을 마친 비련의 미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비련의 주인공이기에 앞서 우리에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시 구절로 더 유명하다.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다는 뜻의 춘래불사춘은 왕소군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에서 유래했다.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옷에 맨 허리끈이 저절로 느슨해지니/가느다란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라오' 지금 우리의 상황이 바로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시기이다.

개구리는 3월 5일 경칩을 맞아 땅으로 올라왔고 지난 20일은 벌써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었는데 우리가 사는 사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여전히 겨울이다.

예전이면 남에서 올라오는 꽃소식에 TV화면이 노란 산수유와 분홍 매화꽃, 그리고 하얀 목련꽃 등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침부터 밤까지 코로나19 이야기로 가득하고, 확진자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료진의 흰 방역복, 확진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분투하는 소방관들의 주황색 제복, 이같은 방역활동을 뒷받침하는 공무원들의 노란색 민방위복이 TV화면을 꽉 채운다.

어둡고 부정적인 내용이 가득한 불사춘(不似春) 시기에 우리 스스로 주위를 봄으로 채워 이미 춘래(春來)였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봄을 알리는 많은 상징물이 있겠지만 그중 으뜸은 꽃일 듯 싶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화훼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졸업식도 입학식도 사라졌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하는 바람에 예년 이맘때 한창 붐볐을 꽃 도매시장에서도 꽃이 안팔려 폐기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민들로서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키워 출하한 꽃들이 폐기물로 전락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주말이나 퇴근 후 가까운 꽃가게에서 꽃다발이나 화분을 사서 집안을 꾸며 보자.

바로 봄이 왔음을 모두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봄에 나오는 식자재로 식탁에 봄을 불러 보자.

우리 조상들은 나물을 말리고 김장을 해서 겨울을 났다.

건나물도 다 없어지고 김장김치도 맛이 떨어질 무렵이면 슬슬 들에서 나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정약용 선생의 아들인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 '이월령'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직 때가 이르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입맛을 돋우나니, 본초강목 참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창출 백출 당귀 천궁 시호 방풍 산약 택사라, 낱낱이 적어 놓고 때 맞추어 캐어 두소.

시골집에 거리낌 없이 값진 약 쓰겠느냐.' 겨우 내 떨어진 입맛을 되살리기 위해 들나물로 봄의 기운을 몸에 채우고, 기운을 갖고 있는 약재를 모아 상비약으로 준비했던 조상들이다.

우리도 식탁을 봄나물로 채워보자.

쑥도 사고 냉이도 사서 국을 끓이고, 간장에 잘게 썬 달래와 참기름을 넣고 밥을 비벼 먹자.

기왕이면 살진 미나리를 데쳐 액젓, 참기름 넣고 무친 것과 함께 먹는다면 봄이 내 몸에 가득할 것이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면 돼지고기를 곁들이면 금상첨화일 듯 싶다.

오성진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얼마 전 전남 진도 농민들이 2012년 수해 복구를 도와줬던 대구 남구 주민들께 봄동을 보내줬다는 뉴스가 있었다.

자가격리로 힘든 대구 시민들을 위해 식탁에서라도 기운내라고 보낸 봄 소식이다.

나눔까지는 아니지만 코로나19로 힘든 나와 가족의 몸을 위해 오늘 꽃 한 다발, 봄나물 한 줌으로 새로운 기운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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