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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詩想과 세상]보내주신 별을 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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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닷새째 추위 지나 오늘은 날이 따뜻합니다

하늘이 낯을 씻은 듯 파랗고

나뭇잎이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소풍 나오려 합니다

긴 소매 아우터를 빨아놓고 흰 티를 갈아입어 봅니다

거울을 닦아야 지은 죄가 잘 보일까요?

새 노래를 공으로 듣는 것도 죄라면 죄겠지요

외롭다고 더러 백지에 써보았던 시간들이 쌓여

돌무더기 위에 새똥이 마르고 있네요

저리 깨끗한 새똥이라면 봉지에 싸 당신께 보내고 싶은 마음 굴뚝입니다

적막을 끓여 솥밥을 지으면 숟가락에 봄 향내가 묻겠습니다

조혼의 나무들이 아이들을 거느리고 소풍 나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은 씀바귀나물의 식구가 늘어났습니다

내 아무리 몸을 씻고 손을 닦아도 나무의 식사에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밤이 되니 쌀알을 뿌린 듯 하늘이 희게 빛납니다

아마도 당신이 보내주신 것이겠지요

잘 닦아 때 묻지 않게 간직하겠습니다

보내주신 별을 잘 받았습니다.

이기철(1943~)

잠깐의 추위가 가고 백지와도 같은 볕이 환하게 들고 날이 좀 더 따사롭다. 파란 하늘은 씻은 듯 말끔하게 드러났다. 환복(換服)한 흰색 티셔츠나 깨끗해진 거울은 봄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혼자 먹는 조촐한 밥에도 향긋함이 묻어난다. 묵은 가지에서 새순이 나오고, 봄나물을 캐는 일에도 한가한 느낌이 있어 좋다. 밤하늘에는 별이 쌀알을 뿌린 듯 희고, 또 빛나고, 시인은 이 봄날의 생기와 청초(淸楚)함을 잘 간직하겠다고 말한다.

시인은 “첫 줄이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다”라고 쓴 적이 있다. ‘첫 줄’은 모든 것의 앞쪽이다. 계절의 앞쪽은 봄이다. ‘첫 줄’은 마주 대할 때의 첫인사이고, 얼굴의 표정이다. 봄빛이 우리들 마음의 ‘첫 줄’이었으면 좋겠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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