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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아침을 열며]코로나19 이후의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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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어제에 바탕한 오늘과 내일에 대한 믿음이다. 인간은 이 신뢰로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적 존재일 때에만 번영할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가 이처럼 신뢰에 바탕해 구축한 세계화체제를 전 방위에서 공격한다는 점에서 ‘탈세계화의 바이러스’이다. 코로나19와의 전쟁 이후 세계는 더 이상 과거와 같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

글로벌 경제의 초연결성은 후퇴할 것으로 보인다. 예로 중국 사업이 각국으로 회귀(리쇼어링)하는 경향이 늘어날 수 있다. 코로나19로 중국 공장들이 멈춰 서며 연쇄적인 생산중단 충격을 겪은 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리스크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민에 빠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리쇼어링을 검토 중인 다국적기업은 80%에 이른다. 부족한 일자리로 골머리를 앓는 각국 정부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달 중국발 리쇼어링 지원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코 보건부 장관은 유럽시장 의약품 3분의 1을 중국산이 차지하는 현실이 ‘보건안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장을 다시 갖고 와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는 대공황 수준의 경제충격이 우려되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얘기가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산·수요가 글로벌 단위로 동시에 무너지고 금융이 얼어붙는 이 같은 위기를 3개월 이상 버텨낼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며 우려한다. 기업 실적 악화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주식과 채권을 팔아 안전자산인 미국 달러화로 교환해 쟁이면서 시장에 돈이 마르고 있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 최소 10조원을 조성할 계획이지만 규모는 충분하지 않다. 이런 상황이라면 핵펀치 연타를 버텨낸 대기업만 살아남고 이들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1997년 외환위기 때에도 부실은행들이 통폐합되면서 은행권 지형이 크게 변한 바 있다.

많은 정부들은 ‘큰 정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의 경제대공습으로 일자리가 증발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생활비라는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는 주체가 현재로서는 정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기업이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는 경우 1인당 월급의 80%, 최대 2500파운드(약 370만원)를 정부가 부담하는 정책을 최근 내놨다. 덴마크도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월급의 75%, 최대 2만3000크로네(약 425만원)을 3개월간 지원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의 13%에 해당하는 재원을 석달간 쏟아붓는 것이다. 덴마크 올보르 대학의 플레밍 라슨 교수는 “기업이 노동자와의 관계를 유지할 경우 (코로나19 이후) 더 강한 경기회복을 이룰 것이라는 정부철학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희망퇴직을 비롯한 구조조정에 들어간 국내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의 구원투수로서 정부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덴마크는 신규 기업대출에 대해 정부가 70%를 보증하기로 했다. 일부 국가들은 위기에 빠진 기업들의 국유화를 검토 중이다. 쓰러진 산업은 일으켜세우면 되지만, 사라진 산업은 다시 세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항공사 알리탈리아, 프랑스의 자동차기업 르노 등이 거론된다. 한국도 이 같은 선택지를 열어놔야 할 수도 있다.

이번 위기는 각국의 ‘각자도생’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바이러스를 함께 뿌리 뽑아야 위기도 끝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국제적 공조는 경제 측면에서도 매우 필요하다. 경제와 공급 체인의 범세계적 속성 때문에 어느 한 국가가 다른 나라를 도외시하고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혼돈뿐이고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우리는 국제적인 행동 플랜이 필요하고, 매우 빨리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글로벌 리더십은 공백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칭하는가 하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에서는 코로나19의 근원이 미국일 수도 있다는 음모론을 흘리며 자국의 방역 성공을 자화자찬하고 있다. 패권국 간 이 같은 설전은 냉전 이후 유례없는 위험 수위다. 코로나19로 인한 인명 및 경제피해가 이제 가시화되기 시작했는데 지도자들의 언행은 무책임하다.

이 위기를 무사히 잘 건널 수 있을까. 바이러스 이후 세계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무엇을 택하느냐에 달렸다.

최민영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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