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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기자가만난세상] 코로나 시대, 비염환자의 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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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지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 확산 중이던 3월 초 미국의 한 교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이 화제가 됐다. 1990년대 인기가수 이지연이 마스크를 쓰고 당시 꿈틀대던 미국 사회의 동양인에 대한 코로나19 관련 인종차별에 항의한 것. 그런데 그가 쓴 마스크에 적힌 문구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스크에는 “I have allergy. No Corona virus(난 알레르기가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다)”라고 선명히 적혀 있었다.

‘동병상련’이랄까. 기자도 심한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고 있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가 반갑지 않다. 늦겨울 시작되는 미세먼지와 봄이 되면 날리는 꽃가루로 콧물이 줄줄 흐르고 재채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아마도 평범한 시기였다면 올봄도 알레르기와의 사투 속에 보냈을 것이다.

세계일보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기에 공공장소에서 재채기를 할 수 없어서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참을 수 없이 콧속이 가려워 재채기라도 나올라치면 스스로 위축돼 필사적으로 숨을 틀어막는다. 그러고 나서도 혹시 누가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을까 눈치를 본다. 신천지 사태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그래서 매일 일어나면 알레르기약을 챙겨 먹는 것이 일상이 됐다. 알레르기를 방지하기 위해 먹는 항히스타민제는 졸리고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기에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약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최대한 재채기를 덜 하기 위해 졸음과 나른함이라는 불편을 참고 견디는 중이다.

다행히 정부와 공무원들의 헌신, 국민들의 사회적 거리 두기 동참 등으로 한국은 외신들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거리를 걷는 데도 조금 안심이 된다. 우리 사회가 뿜어내는 신뢰가 만들어내는 효과다. 다만, 한 번 위축된 마음은 좀처럼 쉽게 펴지지 않는다. 여전히 알레르기약이 만들어내는 나른함과 싸우며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물론, 나는 공공장소에서 재채기만 참으면 그만이다. 그렇게만 하면 그 누구도 바이러스와 기자를 연결 짓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재채기와 달리 숨길 수 없는 증표를 가진 사람들은 어떨까. 코로나19 확산 초기 일부 집단의 혐오 표적이 됐던 중국교포들, 사태 중반기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았던 일부 지역 거주자들, 그리고 이제는 한국보다 더 위험한 곳이 된 해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사람들까지. 아마도 그들 역시 하루하루를 눈치 보며 불안하게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위축된 마음은 알레르기와 달리 약도 없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언젠가 코로나19를 이겨내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훌륭하게 극복해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이후를 걱정하게 된다. 위축돼 구깃구깃해진 어떤 이들의 마음은 의외로 쉽게 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그들의 마음을 열고 구겨진 마음을 펼쳐야만 한다. 지금 코로나19를 버텨내고 있는 국민들이 이어질 후유증도 잘 극복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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