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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우린 안 잡혀" 소라넷·웹하드·텔레그램…'범행무대'의 진화 [악마들의 놀이터 'n번방'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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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넷 폐쇄 이후 텔레그램 등 해외 서버 메신저서 범행

공권력 비웃으며 범행 자신감…사냥하듯 여성들 물색

문제는 처벌 수위 미국 등 다른 나라 피해 솜방망이 처벌 수준

여성계 '강력 처벌' 촉구…'박사' 신상공개 靑 청원 240만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편집자주]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여성 인권 유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갓갓','왓치맨','박사' 등 닉네임을 사용하는 이들은 미성년자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들을 협박, 속칭 '노예'라 부르며 성착취물을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남성들은 여성의 비명을 즐겼습니다. 이들의 범행은 기사에 반영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당시 상황은 '2차 피해'를 우려해 '영혼이 파괴되었다.', '죽어갔다.' 식의 표현으로 갈음했습니다. 소위 'n번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피해 여성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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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메신저 텔레그램 '박사방'의 운영자 조모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나오고 있는 모습. 조모씨는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한 뒤 이를 텔레그램에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소라넷, 웹하드, 다크웹, 텀블러, 텔레그램, 디스코드….


미성년자 등 여성들을 상대로 하는 디지털 성범죄는 공권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대만 옮기며 범행을 지속하고 있다.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중 1명인 '박사' 역시 경찰 수사를 비웃었다.


한 언론을 통해 드러난 '박사'의 실체는 올해 25세 남성으로 이름은 조주빈이다. 조 씨를 비롯해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텔레그램의 경우 서버가 외국에 있어 수사 기관의 추적이 쉽지 않다는 점을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


텔레그램 뿐만 아니라 범죄자들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메신저를 이용하는 이유는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범행이 잔혹할 수밖에 없는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 사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 여성들은 급속도로 늘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시정요구를 받은 성범죄 영상은 2015년 3636건에서 2019년 상반기만 16263건으로 4배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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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범행 갈수록 잔혹, 사냥하듯 여성 물색


자신감을 얻은 '박사'는 범행에 있어 거침이 없었다. 말 그대로 피해 여성들을 물색, 사냥에 나섰다. 그는 고액 아르바이트로 피해자들을 유혹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 쓰인 메신저는 텔레그램이었다.


피해자와 텔레그램에서 만난 '박사'는 '스폰 알바'가 있다면서 자신이 소개해주는 남성들과 대화를 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만 하면 많은 돈을 준다며 범행을 시작했다.


이후 박사는 선지급을 위해 필요하다며 피해자에게 얼굴과 주민등록증이 함께 담긴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어 계좌번호와 연락처도 요구했다. 피해자 개인정보를 모두 확보한 박사는 비밀대화방을 통해 남성을 소개했다.


그 남성은 피해자에게 나체사진을 요구하더니 속옷을 머리에 뒤집어쓴 사진을 보내라고 요구하는 등 변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피해자는 더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고 하자, 박사는 돌변했다. 미리 확보한 개인정보 등을 이용해 피해자 지인들에게 사진을 보내겠다며, 더 수위 높은 사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는 '텔레그램 노예녀'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팔리고 있었다. '관전자'라는 사람들은 피해자를 보기 위해 텔레그램 링크를 타고 와 줄을 서고, 가상화폐를 낸 뒤 '박사'가 개설한 1번방, 2번방, 3번방 등 'n번방'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방에는 피해자와 같은 여성들이 갇혀 있었고, 일부는 미성년자도 있었다.


한 여성은 자신의 몸 위에 '노예', '박사' 등의 글씨를 쓴 뒤 나체로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박사는 피해 여성들에게 '스토리'를 덧입혀 가상의 인물을 만들기도 했다. 관람자들은 이 소설을 읽고 박수 치며 환호했다.


피해 여성들은 박사와 나눈 대화 기록이 이미 사라져 협박과 강요의 증거를 모을 수도 없었다.


그사이 또 다른 'n번방' 운영자 제2의 '박사' 제3의 '박사'들 역시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피해 여성들을 감금하고 돈을 받고 성착취물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관전자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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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2016년 '소라넷' 핵심 서버 폐쇄…텀블러, 텔레그램, 다크웹 대응


그러다 텔레그램은 절대 안전하다던 범죄자들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사' 처럼 'n번방'을 운영하던 A 씨가 올해 초 경찰에 붙잡혔다. 그들이 텔레그램이라는 범죄현장에서 잔혹한 수법으로 피해자들의 인격을 살해하고 있을 때, 현실 세계에서 경찰은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경찰은 최근 드러난 '박사방'과 'n번방' 등 텔레그램을 이용한 디지털성범죄 혐의 피의자 124명을 검거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2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해 9월부터 텔레그램 속 성착취 대화방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인 결과, '박사'로 알려진 조모씨 등을 포함해 총 124명을 검거하고 18명을 구속했다.


경찰이 사이버 성폭력 수사에서 사실상 첫 실질적 성과를 낸 것은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네덜란드와의 공조를 통해 국내 최대 음란 사이트인 '소라넷' 핵심 서버를 폐쇄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박사'와 같은 범죄자들은 또 다른 해외 서버를 이용하고 있는 메신저 서비스 등을 찾아 범죄현장을 마련했다.


텀블러, 텔레그램, 다크웹 등이 그것이다. 경찰도 대응에 나섰다. 2018년 3월 전국 17개 지방청 내에 사이버성폭력전담수사팀이 설치됐다.


2018년 8월에는 경찰청에도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이 문을 열었다. 경찰청 전담 수사팀은 전국 지방청 사이버 성폭력 사건 중 국제공조가 필요할 경우에 직접 수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박사' 등 범죄자들이 자신들의 범행 지속성을 위해 가장 크게 믿고 있는 '해외 서버' 압수수색도 불가능 한 것이 아니다.


기업이 외국에 서버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수사협조가 어렵다고 하면 수사기관이 직접 해당 국가에 급파, 서버 기록을 가져오거나 그 나라의 수사기관과 협력한다.


경찰 수사 대응 상황을 종합하면 누군가 범행을 저지르면, 반드시 범죄자는 붙잡힐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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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울리는 솜방망이 처벌…여성계 "집단 성폭력 개념 도입 가중처벌해야"


문제는 처벌 수위다. '박사'는 현행법상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아동·음란물 제작·배포와 형법상 협박, 강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다.


그가 여성들의 영혼을 파괴한 피해 정도를 고려하면 그의 혐의는 약한 수준이다.


또 현행법상 'n번방' 운영진이 아닌 이용자 행위는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될 가능성이 크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촬영과 유포, 제공만 범죄로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 여성이 등장하는 성착취 영상이나 사진의 경우, 불법촬영물이라 하더라도 직접 촬영하거나 유포하지 않고 시청만 하는 경우는 아예 처벌하는 조항 자체가 없다.


디지털 성범죄자들에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성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불법 촬영 및 유통을 포함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 중 64.2%가 집행유예를 받았고,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6.4%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미성년자 성착취물 범죄에 관여한 이들은 그 범행 내용을 불문하고 중범죄자로 처벌을 받는다. 처벌 대상에는 영상을 촬영한 사람, 촬영을 허락한 사람, 만든 사람 등 범죄와 어떤 연관성이 드러나면 모두 혐의가 적용된다.


미 연방 법률 '아동 포르노 법'에 따르면 사진, 동영상을 포함해 18세 미만 미성년자들의 포르노물을 제작, 배포, 수령, 소유한 사람뿐만 아니라 구하려고 시도한 사람도 처벌 대상이 된다. 말 그대로 '초토화'를 시키는 셈이다.


또 아동 포르노물을 알면서 소유한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사람에게는 최대 10년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포르노물에 등장하는 미성년자가 12세 미만이라면 형량이 최대 20년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이렇다 보니 여성계에서는 '박사' 범행처럼 피해자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에 대해 그에 맞는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여성단체연합 등은 △성적 촬영물 유포를 빌미로 협박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성적 이미지를 텔레그램방 등 온라인에 전시하거나 공유하는 경우 '집단 성폭력' 등의 개념 도입 후 가중처벌 △불법촬영물 소지 처벌 △불법 촬영물 삭제 불응 시 처벌 △온라인서비스 제공자의 의무 명시 및 처벌 △강간죄 구성요건의 개정 △온라인 그루밍 개념 규정 및 형법상 처벌법 도입 등을 제안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등은 최근 낸 성명에서 "디지털 기반 성 착취는 불특정 다수가 함께 영상물을 관람하고 재촬영을 공모한다"며 "성적 이미지를 온라인에 전시하거나 공유하는 경우 '집단 성폭력' 등의 개념을 도입해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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